주지스님 표 국화빵 드셔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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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0일 03시 00분


■ 조계사 토진 스님, 경내 국화축제 맞아 ‘노점 공양’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주지 토진 스님이 국화를 주제로 한 축제를 앞두고 신도들과 국화빵을 굽고 있다. 스님은 “국화만 보지 말고 주지스님표 국화빵도 맛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주지 토진 스님이 국화를 주제로 한 축제를 앞두고 신도들과 국화빵을 굽고 있다. 스님은 “국화만 보지 말고 주지스님표 국화빵도 맛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스님, 손이 너무 커요.” “그래도 팥이 이만큼은 들어가야….” “그럼 모양이 제대로 안 나온다니까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난데없이 ‘국화빵 논쟁’이 벌어졌다. 빵에 들어갈 팥의 양을 둘러싸고 주지 토진 스님(51)과 신도들 사이에 정겨운 입씨름이 벌어진 것. 마침내 스님이 국화빵 틀을 확 뒤집는 시늉을 하면서 “소싯적(고교)에 경남 함양 골짜기에서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붕어빵 좀 구워 봤다”며 출가 이전 경력까지 들먹이자 웃음과 함께 주변이 잠잠해졌다. 스님은 “역시 국화빵은 팥이야”라며 종단에서 카리스마 강하기로 소문난 ‘승소(僧笑)’를 지어 보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에 국화빵 노점이 들어선 것은 21일∼11월 10일 경내에서 열리는 국화축제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 때문. 이 행사에 국화빵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이 스님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100만 송이가 넘는 국화가 코끼리와 하트 등 다양한 형태로 전시된다. 국화꽃은 15t 트럭 11대 분량으로 전남 함평군에서 키운 것이다. 조계사는 무료로 꽃을 전시하는 대신 함평군에서 재배한 농수산물 판매를 위한 직거래 장터를 열기로 했다. 음악회와 실버 예술제, 교리 경진대회, 국화영산재, 어린이미술대회도 연다.

스님은 “요즘 세상살이가 쉽지 않아 고민하는 분이 적지 않다”며 “신앙에 관계없이 많은 분이 조계사를 찾아 국화 향기에 취하고 국화빵도 맛보며 잠시라도 세상 시름을 잊기 바란다”고 말했다.

‘주지스님 표 국화빵’에는 적지 않은 공이 들어갔다. 반죽은 빵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 인근 인사동 국화빵을 대표한다는 할머니의 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스님은 반죽 비법을 전수받지 못했다며 아쉬운 표정이다.

스님은 대표적인 도심 사찰인 조계사가 시민들에게 좋은 먹거리와 휴식 공간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스님의 또 다른 목표는 이른바 ‘소림사 주방장’을 찾는 것. 조계사 구내의 만발식당 메뉴를 어르신들의 건강에 좋은 사찰식 메뉴로 바꾸기 위해서다. 이 식당은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어 한 해 15만 명이 찾고 있다.

최근 조계사 앞에 국숫집 승소(僧笑)를 내기도 한 스님은 “전통적인 사찰 요리법에 능통한 7, 8명의 비구니 스님을 만나 연봉 4000만 원 정도를 제시했는데 영입에 실패했다”며 “한국의 소림사 주방장을 찾아 사찰음식의 전통도 지키고 신도들의 건강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스님은 평소 ‘10년 백수’를 자처하는 거침없는 언행으로도 유명하다. 그동안 별다른 소임 없이 절밥만 축냈다고 했다.

“남의 밥과 돈으로 살아온 ‘10년 백수 행’을 보답하기 위해 팔자에 없는 주지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갚아야죠. 그게 절집에 사는 도리 아닙니까. 아직 국화빵 가격을 못 정했는데 말만 잘하면 공짜로도 줍니다.(웃음)”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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