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주 폴스처치 시에 거주하는 휘터커 씨는 “내가 미국에 처음 왔던 1960년과 비교하면 한국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을 이뤘다”며 “모국이 잘돼야 우리가 여기서 떳떳이 살 수 있는데 WP가 국빈방문 기사를 소홀히 다룬 것을 보고 참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통령이 국빈방문을 마치고 디트로이트행 비행기를 타던 14일 WP에 엄중하게 따지는 편지를 썼다.
“며칠 뒤 WP 논설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독자투고란에 게재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원고를 보낸 사람이 내가 맞는지, 어디서 베낀 것은 아닌지 물어왔습니다.”
WP는 22일자 A13면에 ‘한국에 충분하지 않다(Not enough o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독자기고문과 13일 백악관 잔디광장에서 열린 환영식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이 대통령이 포옹하는 사진을 실었다.
독자투고 기사가 나간 후 한인들로부터 “미국 신문이 한국 관련 사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때마다 미국 신문에 불쾌했는데 귀하의 용기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는 격려 전화와 e메일이 잇따랐다.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1955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졸업한 휘터커 씨는 당시 국제연합재건단(UNKRA)에 근무하던 도널드 휘터커 씨와 결혼해 1960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1982년 설립된 워싱턴한국여성회 창립자로 초대 회장을 지냈다.
그의 아버지 임병운 씨는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일제에 잡혀 사망했고, 독립운동가인 작은할아버지 임국정 씨는 소련으로 도주했으나 일본군에 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되는 등 집안이 독립운동에 매달렸다.
1936년 8월 25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삭제한 사진이 동아일보 지면에 게재될 때 장용서 기자와 함께 편집을 맡았던 임병철 전 동아일보 기자(1906∼1947)가 그의 5촌 당숙이다. 임 기자는 이후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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