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국가의 정통성을 계승하며 짧은 시간에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신장이라는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럼에도 교과서에는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왜곡과 자학사관으로 가득합니다.”(송월주 스님)
“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신문과 TV만 보는 우리 방식으로는 젊은 세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꿈속에 있습니다. 그들 방식으로 파고 들어가 소통해야 합니다.”(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2008년 6월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 분위기는 무거웠다. 회의에는 각계 원로로 구성된 10여 명의 고문과 시도지사, 장차관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이명박 대통령이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한 날이다.
이 전 장관은 이 시위를 염두에 둔 듯 정부가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15분 이상 이어졌다. 평소 회의 관행과는 달리 긴 편이었다.
내가 본 이 전 장관은 ‘언제나 청춘’이다. 말을 끊기 어려운 특유의 달변과 촌철살인의 재치, 동서양을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 그를 수식할 수 있는 단어는 많다.
그러나 이보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젊은 마인드와 어느 순간 한 가지에 푹 빠지는 몰입 능력이다. 그래서 “이 장관은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그는 다른 사람이 돼 있다.
나는 그를 교수와 문화평론가, 장관, 사회원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수십 차례 만났다. 특히 인상 깊은 모습은 1990년대 초반 노태우 대통령 시절 만난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다. 당시 종단은 조계사와 봉은사 쪽으로 나뉘어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나는 사태 해결을 위해 벽암 스님과 함께 장관을 만났다. 정작 종단 분쟁에 대해서는 ‘원만히 수습되어야 한다’는 짧은 언급이 전부였다. 그 다음 이 장관의 말이 종횡무진 이어졌다.
“유생(儒生)들이 젊었을 때는 통치이념으로 유교를 받아들이지만 나이가 들면 무상함을 느껴 불교의 공(空) 사상에 많이 빠집니다. 이른바 선유후불(先儒後佛)이죠.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이 사상이야말로 인류사에서 값지고 빛나는 진리입니다.”
명색이 스님인 내가 한동안 그의 불교 강의를 들었다. 그는 토정 이지함 선생과 관련한 얘기도 했다. 하여간 동서양 철학과 문학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 받은 강렬한 인상이 남아서인지 나는 1994년 총무원장을 맡고 있을 때 스님들을 위한 교육시간에 그를 강사로 초청했다. 연기론 예찬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주만물의 생성소멸이 독립적인 게 아니라 원인과 조건에 따라 그 결과로 나타난다는 연기론을 현대식으로 풀이해 큰 박수를 받았다. 2006년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 인문학의 뿌리는 불교’라는 강연회를 통해 그는 “조화와 중도의 불교적 동양사상으로 인류의 정신적 문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 인문학의 과제이자 인류 평화공존을 위한 희망의 등불을 찾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던 그가 몇 해 전 개신교 신자가 됐다고 한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그는 ‘이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도 냈다. 그가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것은 가족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거의 그를 기억하는 불교계에서는 이런 말도 나온다. “그때 (이 장관) 말은 입으로 한 얘기였나? 마음으로 한 얘기가 아닌 게지.”
종교와 학문은 다를 것이다. 개신교 신자가 된 그의 변화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신앙의 자유가 엄연한데 그럴 생각도 없다.
다만, 불교의 가치와 미덕을 그처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인은 드물다. 어쩌면 내가 속으로 이 전 장관과 불교의 인연이 더 깊어지기를 바란 것일지도 모른다. 불가에 몸을 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좀 아깝고 아쉽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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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태백산맥’의 소설가 조정래 씨와 2대에 걸친 인연과 국악인 안숙선 씨를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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