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 경찰 제복을 입고 교단에 선 연사가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으로 유명한 개그맨 최효종 흉내를 내자 초등학교 6학년생 200여 명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이 다 때린다고 나도 따라 하면 학교폭력 맞습니다. 친구가 일진한테 맞는 걸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폭력에 동참하는 거예요.”
한 학생이 “그냥 보고만 있어도요?”라고 묻자 연사는 ‘애정남’ 사투리로 “아무도 안 도와주면 맞는 친구 입장에선 혼자 집단 폭행을 당하는 것 같아 더 무서운 거예요∼잉”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31일 서울 강서구 등촌초등학교 강당 무대에 선 이 연사는 경찰청 ‘기본과원칙구현추진단’ 박우현 총경. 박 총경은 이날 자신의 딸(6학년)과 아들(3학년)이 다니는 이 학교를 ‘일일교사’ 자격으로 찾았다. 최근 학교폭력 대책으로 경찰관들이 자녀의 학교를 찾아 직접 예방교육을 하기로 했고 박 총경이 첫 타자로 나선 것. 그는 “경찰관이기 이전에 두 남매를 둔 학부모이고 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마음이 아니면 학교폭력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그런 방안을 제안했다.
‘애정남 공세’로 아이들의 관심을 끈 박 총경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강조했다. “‘나는 어리니까 괜찮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교폭력을 저지르면 여러분도 감옥은 안 가도 소년원에 갑니다. 13세면 자기 행동에 책임져야 할 나이예요.” 박 총경의 진지한 표정에 학생들은 숨을 죽였다. 그가 가해학생 처벌내용을 소개하며 ‘다른 사람을 때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란 말을 꺼내자 학생들은 ‘헉, 정말요?’라며 놀라워했다. 실제로 어린이나 청소년이라도 범죄를 저질러 구속되면 만 10∼13세는 소년원에, 만 14세부터는 교도소에 수감된다.
퀴즈도 이어졌다. 박 총경은 한 남학생을 교단으로 불러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중학생 형들에게 골목에서 맞은 적이 있는데 신고하면 더 세게 때린다고 해서 안 했다”고 답했다. 박 총경은 준비해온 경찰 배지를 학생 가슴에 달아주며 “오늘부터 경찰로 임명하니 앞으로 그럴 땐 선생님이나 경찰에 알리고 친구들이 그런 일을 당하면 대신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마지막 퀴즈로 “학교폭력 신고전화를 맞히면 선물을 준다”고 하자 수십 명이 손을 들고 ‘117’(학교폭력 상담전화)을 외쳤다.
학생들은 “경찰관 아저씨가 직접 설명해주니 평소 수업 때보다 신뢰가 가고 실감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모 군은 “단체로 심하게 때리는 것만 학교폭력인 줄 알았는데 문자로 욕하는 것도 폭력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젠 안 그러겠다”고 했다. 임모 양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어떤 벌을 받나 궁금했는데 유익했다. 117에 전화 거는 게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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