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상 최고 기술상 황병준 씨 “국악으로 그래미상 도전… 역사를 만드는 중”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4일 03시 00분


■ 국립국악원서 음반 녹음

황병준 사운드미러 코리아 대표가 ‘영산회상’ 녹음 현장에서 소리의 강약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황 대표는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제공
황병준 사운드미러 코리아 대표가 ‘영산회상’ 녹음 현장에서 소리의 강약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황 대표는 전체적인 밸런스를 맞추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제공
황병준 사운드미러 코리아 대표(45)는 이날을 고대했다. 2월 제54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작곡가 로버트 올드리지의 오페라 ‘엘머 갠트리’로 ‘클래식음반 최고 기술상’을 받은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주어 말했다. 다음에는 꼭 국악음반으로 상을 받고 싶다고.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 뒤 남자 분장실이 황 대표의 컨트롤 룸으로 변신했다. 어지러이 곡선을 그리는 수십 가닥의 전선, 붉은색과 녹색의 등이 점멸하는 이곳에서 가장 빛나는 건 그의 눈이었다. 그는 “국내 최고 실력의 국악 연주팀과 작업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 음반으로 또 그래미상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무대에는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 36명이 반원 형태로 정좌했다. “따다닥!” 오후 2시 국립국악원 이세환 지도위원의 집박(執拍·박을 치는 것)을 신호로 ‘관악 영산회상’ 녹음이 시작됐다. 장구와 좌고(座鼓)의 울림으로 문을 연 뒤 대금과 피리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옛 선비의 꿋꿋한 기개를 펼쳤다. 오전에는 연주시간이 70분에 이르는 ‘가즌회상’ 녹음을 마쳤다.

정악단은 통상 반듯이 줄을 맞춰 앉지만 황 대표는 호흡을 더 잘 맞추기 위해 서로 얼굴이 보이게 앉도록 했다. 악단도 보통 공연 때보다 6m 정도 전진 배치했다. 이렇게 해보니 소리의 울림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대금 피리 해금 아쟁 등 악기군마다, 또 무대 앞쪽과 객석까지 마이크 18개를 설치했다. 장구과 좌고 옆에는 담요를 덮은 칸막이를 두어 소리가 과도하게 퍼지지 않도록 했다. 녹음을 마친 뒤 그는 “오래 묵은 우리의 진짜 소리를 고스란히 담고 싶었는데 작업이 무척 만족스럽다”고 활짝 웃었다.

당초 국립국악원은 영산회상 녹음 계획을 세운 뒤에 황 대표의 그래미상 수상 소식을 접했다. ‘시험 삼아’ 황 대표에게 비용을 문의했는데 견적을 받고 깜짝 놀랐다. 다른 업체의 절반에 불과한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황 대표는 “국악원 예산이 많지 않을 것이고, 꼭 하고 싶었던 작업이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에게도 전통음악 독주가 아닌 합주를 녹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악은 휴식을 주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자연친화적인 음악입니다.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녹음과 포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국악이 소리가 작고 힘이 없다는 오해를 받지만, 자연스러운 소리를 제대로 살리는 게 관건입니다.”

‘영산회상’을 담은 음반은 일반 CD의 최고 24배 용량에 이르는 고음질에 5.1채널로 구현이 가능한 슈퍼오디오CD(SACD)로 제작한다. 국립국악원은 지금까지 ‘증정용’ 음반만 제작해 왔지만 이 음반은 판매용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이번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다시 노크할 계획인 황 대표는 또 다른 꿈을 꾼다. 시상식장에 한복을 입고 가는 꿈이다. “동양의 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우주를 품은 음악과 환상적인 앙상블에 그 사람들(해외 청중들)이 분명히 환호할 거예요. 오늘 리허설 들어가면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든다’고요.”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그래미#황병준#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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