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방문교수 자격으로 미국 북서부 몬태나 주 보즈먼에 온 허화영 씨(50)는 4·11총선 재외선거 투표를 위해 무려 11시간 동안 차를 몰고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국에서는 보통 투표소가 걸어서 5분 거리잖아요. 여기서는 말 그대로 정말 먼 얘기죠. 그래도 어렵게 주어진 투표권을 날리고 싶진 않습니다.”
몬태나 주는 시애틀 총영사관이 관할하고 있다. 우편으로 가족 4명의 유권자 등록을 한 허 씨는 미 서부 워싱턴 주의 시애틀 투표소까지 갈 계획이다. 당일 돌아오는 것은 무리여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기름값(250달러) 숙박비(100∼150달러) 등을 포함해 경비만 500달러를 훌쩍 넘는다. 그에게 이번 투표는 ‘1박 2일 500달러’의 값비싼 투표인 셈이다.
28일부터 4월 2일까지 6일 동안 해외 전 재외공관에서 일제히 시작되는 재외국민선거의 유권자 등록률은 5.57%(대상자 223만3193명 중 12만4350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실제 투표율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의 경우 공관 1곳이 한국과 맞먹는 면적을 가진 주(州) 서너 개를 관할하는 경우가 많아 투표소까지 몇 시간 걸리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몬태나 주 미줄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김영욱 씨(42)는 10년 만의 첫 투표다. 주위에서는 “투표소까지 어떻게 가느냐”고 하지만 그는 투표를 할 작정이다. 김 씨는 “8시간 이상을 달려 하룻밤을 자야 하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다”고 말했다. 정작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그의 주민등록 소재지인 서울 지역구에서 나오는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다. 그는 “21일부터 인터넷에 뜬 뉴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른 내용을 보면서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뉴욕 총영사관은 뉴욕,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 등 4개 주에 거주하는 재외 국민의 투표를 관할한다. 이 중 델라웨어 주에서 투표 등록을 한 유권자는 고작 8명. 이 중 5명이 투표 포기를 고민하고 있다.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로 방문교수 자격으로 미국에 와있는 최준호 씨(53)는 “영사관에서 직접 인근 성당까지 찾아와 유권자 등록을 받을 때만 해도 투표도 우편으로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3시간을 들여 직접 가야 한다니 포기 상태”라고 말했다. 아이다호 주 보이시에 살고 있는 유재현 씨(41)도 우편 투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당황하고 있다.
재외선거는 한국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국외부재자와 주민등록이 말소된 영주권자 등 재외선거인으로 나뉜다. 재외선거인은 국외부재자와 달리 정당 비례투표에만 참가할 수 있다. 그래서 유권자 등록률이 더 저조하다.
뉴저지 주 웨스트윈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미 영주권자인 소헌 씨(57)는 그럼에도 3시간을 달려 뉴욕 총영사관에 유권자 등록을 했다. 또 28일 근무를 마치고 부인과 함께 투표소로 갈 생각이다. 소 씨는 “(투표 환경이 열악해) 이번으로 재외선거가 폐지될까 봐 걱정”이라며 “30년 만에 처음 하는 투표라 너무 설렌다. 문제점을 보완해 앞으로도 계속 투표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재외선거에 투입된 예산은 213억 원. 등록한 유권자 1인당 17만 원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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