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숨겨진 아들이 아버지가 지어준 집에서 쫓겨나게 된 사실이 30일 확인됐다.
김 전 부장과 내연녀였던 장정이 씨(2008년 사망·당시 81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모 씨(43)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구한 가족사와 자신이 40여 년간 살던 집을 떠나게 된 사연을 털어놨다.
기자는 30일 서울시교육청의 퇴거 요청에 따라 곧 떠나야 할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에서 김 씨를 만났다. 녹슨 철문의 빗장을 풀자 버려진 폐가를 방불케 하는 1층 양옥이 나타났다. 오래 방치된 정원에는 각종 나무와 잡초가 무성했다. 지난해 여름 태풍 피해로 집 천장 일부가 무너져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지만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 방치한 상태였다. 과거의 영화(榮華)를 짐작하게 하는 백자와 청자, 서예 작품 몇 점이 파손된 채 거실 구석에 진열돼 있었다.
김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잇달아 사업에 실패해 남아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한 뒤로 어렵게 살아왔다”며 “지금은 공과금도 내기 힘들어 전기와 난방도 못 쓴다”고 했다.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 처지인 김 씨는 현재 파견직 운전사 일로 카드 빚을 갚으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김 씨가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80평짜리 집은 아버지인 김 전 부장이 1960년대 인사동과 우이동 일대에서 고급 요정을 운영하던 어머니 장 씨에게 선물한 것이다. 김 전 부장은 자신이 설립을 주도한 학교법인 중경학원 용지 일부에 휘하의 공병부대원들을 동원해 집을 짓고 남편과 이혼한 장 씨를 데려와 15년간 동거했다. 김 전 부장은 1979년 10·26사태가 있기 전까지 한 달에 한두 차례 장 씨의 집을 방문하며 생활비를 댔다. 김 씨 가족은 운전사와 유모, 개인 가정교사, 집 관리인을 부릴 정도로 유복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10·26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됐다. 김 전 부장이 세운 중경학원은 부정축재 재산환수 조치에 따라 신군부의 손에 넘어갔다. 학원 용지로 등록돼 있던 김 씨의 집은 1986년 학원 재단의 결정으로 서울시교육청에 넘어갔다. 김 씨 가족은 7년간 이어진 소송에서 “20년 이상 취득 의사를 갖고 이 집에서 살아왔다”며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2010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려 시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김 씨는 “아버지가 사형 선고를 받고 돌아가신 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제대로 사회생활을 못했다”며 “‘역적의 사생아’라는 손가락질이 견디기 힘들어 평생 숨어 지냈는데 이제 집에서까지 쫓겨나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10·26이 일어나기 전 아버지가 ‘한동안 나 없이도 잘 지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때 이미 유신정권을 끝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며 “당시로 되돌아간다면 아버지를 말리고 싶다”고도 했다.
법원은 지난달 집행관을 파견해 김 씨에게 퇴거요청서를 전달하고 4월까지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한 상태다. 시교육청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지원을 받으며 정부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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