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6·25참전 → 동생 찾아 입대한 兄전사 → 유품 갖고 귀국한 동생 “형 옆에 안장” 유언
동생을 찾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해 이국땅에 묻힌 형, 그리고 평생 형을 그리워하다 눈을 감은 노년의 동생…. 이들이 60여 년 만에 나란히 옆자리에 눕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25일 부산 남구 대연동 유엔묘지에서 6·25전쟁에 캐나다군으로 참전한 조지프 허시, 아치볼드 허시 형제의 합동안장식을 개최한다고 17일 밝혔다.
형제의 애틋한 사연은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초 조지프 씨(당시 22세)는 다니던 철도회사를 그만두고 군에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했다. 도로 관리자로 근무하다 4개월 먼저 입대해 6·25전쟁에 참전한 동생 아치볼드 씨(당시 21세)가 걱정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혈육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형은 동생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같은 부대인 캐나다 제2보병대대에 지원해 한국 파병 길에 올랐다.
하지만 형제는 전쟁 기간에 서로 만나지 못했다. 연일 공산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동생의 안부를 수소문하던 형은 1951년 10월 13일 치열한 전투 와중에 적탄을 어깨에 맞고 쓰러졌다. 출혈이 너무 심해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제야 동생은 형의 참전과 부상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왔고, 형제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짧지만 감격어린 재회를 했다. 동생은 형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참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만 형은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채 숨을 거뒀다.
형의 유해는 1951년 10월 17일 유엔묘지에 안장됐고 동생은 귀국해 형의 마지막 유품인 잠옷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는 장남의 ‘마지막 흔적’을 눈을 감는 날까지 간직했다고 한다.
홀로 남은 동생도 해가 갈수록 형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25년간 폐질환으로 투병하던 아치볼드 씨는 지난해 6월 딸인 데비 허시 씨(41)에게 “내 유해를 한국에 잠든 형과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뒤 생을 마감했다.
이후 딸은 아버지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사연을 접한 한인 출신 연아 마틴 캐나다 상원의원은 국가보훈처에 e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캐나다 현지 관련 단체들도 형제의 합동안장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모금에 나섰다.
데비 씨는 22일 아들(16)과 함께 아버지의 유해를 갖고 보훈처의 초청으로 방한할 예정이다. 다른 참전용사들도 동행한다. 보훈처는 인천공항에서 데비 씨를 포함해 캐나다 참전용사와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봉영식을 한 뒤 25일 부산 유엔묘지에서 형제의 추모행사와 합동안장식을 개최할 계획이다. 박승춘 보훈처장은 유족에게 참전에 사의를 표하는 액자와 메달, 감사패를 증정할 계획이다.
6·25전쟁 당시 캐나다군은 모두 2만6791명이 참전해 516명이 전사하고 30여 명이 실종됐으며 1200여 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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