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예찬’ 저자 마이클 린치 “인식의 공통기준 세워야 이성적 토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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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8일 03시 00분


■마이클 린치 美 코네티컷대 교수 서울서 강연

마이클 린치 교수는 “인간이 이성을 공유한다는 이념을 포기하는 것은 곧 민주시민사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마이클 린치 교수는 “인간이 이성을 공유한다는 이념을 포기하는 것은 곧 민주시민사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기후변화부터 광우병, 천안함 폭침 논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회적 논쟁마다 이성적 증거로 호소하기보다는 각자 가진 ‘신념의 벽’만 높이기 일쑤다. 정치권에서도 이성보다 감성에 대한 호소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가히 이성(理性)의 수난시대요, 감각과 막말이 우선하는 시대다.

신간 ‘이성예찬’(진성북스)의 저자 마이클 린치 미국 코네티컷대 철학과 교수(47)를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빌 콘퍼런스룸에서 만났다. 언어철학과 형이상학, 인식론 분야의 권위자이자 ‘다원주의 진리론’의 옹호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8∼12일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으로서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한국은 광우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쟁 등으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겪었다.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미국에서도 지구온난화, 에이즈, 창조론과 진화론, 홍역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쟁이 이성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내놓는 근거의 합리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는 인식의 공통 기준이 무너진 데 이유가 있다. ‘무엇이 이성적이고 이성적이지 않은가’에 대한 공유 기준이 없으면 결국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멍청이나 고집불통이라고 비난하는 소모적 논쟁만 거듭하게 된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이 이성적 토론에 끼친 영향은….

“현대인은 점차 폐쇄적으로 각각의 칸막이에 갇혀 편견을 강화해가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인터넷은 많은 정보를 생산해내지만 역설적으로 지식의 양은 적어지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구글에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검색했는데, 누군가가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과학적인 ‘근거’를 달아놓을 경우 많은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정보에서 거품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편견의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안한 공간(comfort zone)’을 깨고 나와야 한다.”

―올해는 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과 국민이 합리적인 소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미국도 올해 대선을 치른다. 각국에서 점점 이성보다는 감정적 호소, 험담, 조작 등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TV토론에서 유권자들은 토론내용보다 외모나 인상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문 등에서 다각적으로 체크한 심층 정보를 얻으면 의견을 바꾸기도 한다. 이성에 의한 소통은 훨씬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나 이성적 소통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다.”

―정계에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같은 스캔들인데도 내 편이냐 상대편이냐에 따라 가치판단의 기준이 달라지는 문제를 어떻게 보나.

“정치세계에서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 다른 잣대로 보는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맞춰가는 과정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강요나 조작 같은 방법으로는 안 된다. 상대방의 이성을 존중하며 합리적 논리로 맞춰나가야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이성예찬#마이클 린치#마이클 린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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