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65cm에 몸무게 38kg. 보기에도 가냘픈 어린 발레리나 박영진 양(14)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무대 위에 섰다. 이 무대는 서울문화재단이 마련한 ‘2012 예술로 희망드림 프로젝트’ 오디션이었다. 형편은 조금 어렵지만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영재를 발굴해 육성하기 위한 자리다. 긴장할 만한 분위기였지만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박 양은 능숙하게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로 서서 다른 쪽 다리를 뒤로 올린 동작)를 선보였다.
예술전문학교인 예원학교 2학년 박 양은 친구들이 12만∼18만 원 하는 토슈즈를 신을 때 8만 원짜리 토슈즈를 신으면서도 구김살 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연습량이 워낙 많아서 발레에 필요한 토슈즈는 한번 신으면 못 쓸 정도가 되죠. 부담을 줄이려고 고쳐서 두 번씩 쓰게 하는데도 영진이는 ‘나는 토슈즈도 저렴한 게 좋다’고 하니 대견하죠.”
박 양의 어머니 이선희 씨(48)가 웃으며 말했다. 시종 쑥스러운 듯 웃기만 하던 박 양은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발레복 입고 있을 때는 언제나 행복한데, 발레를 그만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싫다”고 말했다. 이날 박 양은 1분에 걸쳐 파드되(2인무)의 여성 파트 동작을 선보였다. 다른 지원자에 비해 다소 짧은 연기였지만 심사위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날 박 양의 연기를 지켜본 이원국발레단의 이원국 예술감독(45)은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박 양이 탄탄한 기본기 위에 탁월한 예술적 표현능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 양의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니다 친구의 제안으로 의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2007년 무일푼으로 사업을 접어야 했다. 발레를 시작한 딸의 뒷바라지는 엄두도 못 낼 처지였다. 하지만 예술 영재를 알아본 사람들의 후원이 적지 않았다. 발레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드는 작품비가 600만 원 정도였는데 돈을 받지 않고 도와주겠다는 강사, 학원비를 거의 받지 않고 박 양을 키우겠다고 제안한 학원도 있었다. 이 씨는 “아이가 재능 있고 열정도 남달랐지만 주변의 격려와 도움도 큰 힘이 됐다”며 “아이가 부모 능력보다 자신의 재능으로 평가받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디션에는 무용·미술·음악·전통예술 분야의 초중고교생 108명이 참가했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이 사업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재능을 꽃피우는 어린 예술가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박 양이 지원한 인재육성 분야는 저소득층 전공자의 진로 개발을 위한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다. 이 분야에 합격한 학생은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총 500만 원을 지원받는다.
어머니 이 씨는 박 양이 쓴 지원서를 내밀었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힘들고 지치지만 내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 가슴속에서 자라고 있는 꿈과 희망은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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