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철학수업… 중학생들 눈이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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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7일 03시 00분


■ 경희대 철학교수 8명, 서울 경수중서 ‘눈높이 수업’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경수중에서 경희대 서동은 교수가 ‘폭력을 없애려면’을 주제로
철학수업을 하고 있다. 교수의 질문과 학생들의 답변이 오가면서 1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경수중 제공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경수중에서 경희대 서동은 교수가 ‘폭력을 없애려면’을 주제로 철학수업을 하고 있다. 교수의 질문과 학생들의 답변이 오가면서 1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경수중 제공
“철학이라고 해서 지루할 줄 알았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4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경수중 2학년 2반 교실에서 철학수업이 시작됐다. 교단에 선 사람은 교사가 아니라 경희대 서동은 교수. 서 교수는 수업에 앞서 “발표를 잘하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특별히 주문해서 가져왔다”며 사탕을 한 움큼 꺼내보였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의 철학전공 교수 8명은 올해 1학기부터 일주일에 한 시간씩 경수중을 찾아 2학년 학생들에게 철학수업을 하고 있다. 이 수업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 시민단체 등 20곳을 선정해 벌이고 있는 시민인문강좌 지원사업의 하나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일반인에게 강연을 하는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이 수업이 유일하다.

경희대 교수들의 강의 제목은 ‘치유를 위한 철학 강좌’. 고등학교보다 학교폭력이 심각하고 인성교육이 시급한 중학교를 대상으로 하되 취약계층 학생이 많은 학교를 찾아가기로 했다. 경수중은 영세공장 밀집지대에 위치해 있어 취약계층 학생이 많은 학교로 꼽힌다.

서 교수는 최근 한 달간 아이들과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얘기해왔다. 이날 수업 주제는 ‘폭력을 없애려면’. 폭력성 주제를 마무리하는 수업이었다.

서 교수는 폭력적인 상황을 담은 그림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그림의 의미를 물었다. 이어 학생 5명을 앞으로 불러내 자신과 다른 4명의 차이점을 찾아내는 게임을 했다. 가장 많은 차이점을 찾아내는 학생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여러 사람의 손 그림을 보여주면서는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말해보라”고도 했다.

수업 내내 계속되는 교수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발표를 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서 교수는 ‘폭력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남의 다른 점을 개성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남의 처지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등의 답변을 쏟아냈다.

대학교수가 중학교 2학년생에게 철학수업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아이들에게 철학적인 글을 읽게 한다거나 유명 철학자 얘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 교수는 “금방 집중력을 잃는 아이들에게 강연을 듣게만 할 수는 없었다. 계속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이 대안이었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철학수업 때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김지영 양은 “같은 걸 보고도 친구와 내 생각이 다르다는 게 재미있다. 친구들 얘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교수가 중학생에게 철학수업을 할 수 있겠느냐며 반신반의했던 교사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허동성 교사는 “교수들이 가장 말썽을 많이 부리는 2학년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예상보다 교육효과가 높다”며 “생각하는 힘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에게 철학수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한국연구재단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함께 우수한 인문학 대중강연 사례를 찾아 다른 지역 및 학교 등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홍숙희 박사는 “경수중 철학수업은 학교와 대학 등 지역사회 기관이 연계하는 좋은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철학#중학생 철학수업#경수중학교#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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