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못 마치고 세상을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성금을 전달한 노점상 할머니, 문중이 500년간 지켜온 땅을 희사한 종손,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 광고료를 보낸 익명의 시민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도우려는 이들의 소박한 꿈이 41년간 124억 원 규모의 동아꿈나무재단으로 자랐다. 재단의 역사와 활동, 기탁자 295명의 사연을 동아꿈나무재단이 최근 ‘꿈나무의 나이테’(사진)란 책에 담았다.
재단은 1971년 시민 오달곤 씨가 100만 원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후세로부터 원망받는 조상이 되고 싶지 않다.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인 2020년부터 장학기금으로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때부터 1985년까지 김상돈 오광수 오창흔 씨를 비롯한 독지가들의 기탁이 이어졌다. ‘못 배운 한을 학교 설립으로 풀어 달라’, ‘불우하고 장애를 가진 학생을 도와 달라’는 바람을 전하면서.
동아일보사는 기탁금을 별도 기금으로 관리하다가 1985년 재단법인 동아꿈나무재단을 설립했다. 1974, 75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 시민들이 보낸 후원금을 합쳐 3억 원을 출연했다. 이듬해에는 안동 권씨 화천군파 종손인 권희종 씨가 조선시대인 1487년부터 문중에서 관리하던 서울 강남구 청담동 땅(2만4420m²·당시 시가 18억 원)을 희사했다.
경북 구미시의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는 김경환 할머니는 2008년 300만 원을 출연했다. 군대에서 죽은 막내아들이 못다 한 공부를 다른 학생들이 잘 마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강우금 씨(여)는 2006년에 97세로 작고하면서 고학생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과 함께 500만 원을 남겼다.
재단은 기금을 바탕으로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또 학술연구비와 교육기관 지원, 청소년 선도 사업, 장애인 지원 사업을 펼친다. 2007년 이후로는 해마다 2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재단 측은 발간사를 통해 “한푼 두푼 용돈을 모았다가 내놓은 감동적인 사연과 꾸준히 기금을 쌓거나 큰 재산을 선뜻 내놓은 독지가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더욱 내실 있는 재단 운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기탁자의 절반 이상이 현재 연락이 되지 않는데, 주소를 알려주면 재단사를 보낼 계획이다. 02-361-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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