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 12일자 본보 스포츠면은 여고생 테니스 유망주를 톱기사로 다뤘다. 부산 동호여상 2학년에 다니던 16세 소녀가 국내 무대를 평정한 데 이어 더 넓은 세상을 꿈꾼다는 내용이었다. 박성희 씨(37)였다. 그는 1990년대 한국 선수 최초로 4대 메이저대회 본선에 모두 출전했다. 세계 100위 벽을 허물고 1995년 세계 57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그를 롤모델로 삼은 이형택과 조윤정은 2000년대 투어 무대에서 활약했다.
한국 테니스 국제화의 개척자였던 박 씨가 제2의 인생을 힘차게 열고 있다. 박 씨는 지난달 28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명문 국립대인 스털링대에서 스포츠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최근 귀국했다. 학위논문 주제는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은퇴 과정, 은퇴 후 적응과 선수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였다.
2000년 은퇴한 그는 26세 때인 2001년 이화여대 체육학과에 입학해 6학기 동안 최우등 장학금을 받으며 7학기 만에 졸업해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물산 선수 시절 은사였던 주원홍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의 후원과 대한체육회의 장학금을 받아 영국 유학을 떠났다. 올림픽에 두 차례 출전했던 그의 박사학위 취득은 학교 홈페이지에 주요 뉴스로 소개됐다. 박 씨는 “스포츠 현장과 학문 분야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 운동선수의 은퇴 후 진로와 삶의 질과 관련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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