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젊을 때 고생 마이 했소. 그런데 지금은 이래 조국서 돌봐 주니 마음이 아주 좋소.”
박루바 할머니(82)는 이렇게 말하며 바지를 걷어올렸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젊은 시절 너무 일을 많이 한 탓에 다리가 상해 혼자 걷기가 힘들었던 박 할머니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의 아리랑요양원에 2010년 2월 입소한 뒤 수술을 받아 지금은 부축받지 않고도 요양원 안팎을 돌아다닐 수 있다.
아리랑요양원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운영하는 세계 유일 고려인(러시아 일대 거주하는 한민족을 지칭) 노인요양시설이다. 2010년에 설립돼 고려인 노인 39명을 돌보고 있다.
8일 오전 요양원은 노인뿐 아니라 인근에서 몰려온 마을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 인하대병원 의료진이 봉사활동을 펼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이다. 정문 밖에는 멀리서 환자를 싣고 온 차량도 10여 대 주차돼 있었다. 인하대병원은 3년째 아리랑요양원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날 진료받은 요양원 노인 대다수는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특유의 강한 햇살에 노출된 채 평생 야외에서 농사를 지은 탓이다. 박 할머니도 이번 진료에서 한쪽 눈이 백내장이라고 진단받았다. 수술을 받으면 나을 수 있지만 의료 환경이 열악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수술을 해도 완치를 장담할 수 없다. 인하대병원 측은 정밀검사를 해 중증으로 진단된 노인은 한국으로 초청해 시술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 외에 신경통 등 노인성 질환을 살펴본 의료진은 주사와 약 등을 처방하고 요양원에 치료 약품을 전달했다.
박 할머니를 비롯한 이 요양원 노인들의 삶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의 역사를 대변한다. 박 할머니는 193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으로 옮겨왔다. 75년 전 일이다. 가족에게는 농사가 불가능한 늪지가 정착지로 주어졌다. 박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갈대 비서(베서) 집 짓고, 도랑 쳐서 물 빼고, 벼질(모내기)해서 농사를 지어 결혼해서는 다섯 남매를 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1991년 우즈베키스탄이 구소련에서 독립한 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해 모아뒀던 재산은 폐휴지처럼 가치를 거의 잃었다. 최성정 아리랑요양원장은 “당시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재기하지 못해 요즘 고려인 노인 대부분이 생활고를 겪는다”고 설명했다.
이날 요양원을 방문한 이수구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65)는 요양원 노인들에게 “어르신들의 치아가 많이 상해 있는걸 보니 마음이 아프다”며 “치과의사 출신으로서 책임지고 앞으로 음식 드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고려인 강제이주 역사는 조국의 힘이 없어 생겼던 비극이다”라며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까지 도울 정도로 한국이 넉넉해졌으니 고려인 노인들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메디컬소셜센터, 우르타치르치크아동병원 지원, 모바일 클리닉 운영, 현지 의료진 초청연수 등 다양한 의료 환경 개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의료봉사활동이 끝날 무렵 로비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이 마치 답례라도 하듯 박 할머니의 선창을 따라 ‘홀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고국의 말과 노래를 잊어가는 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왔던 한국 대학생들이 알려준 노래라고 했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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