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명량대첩 당시 통제사 이순신은 당사도(전남 신안군 암태면 추정)를 둘러보고 마음에 들어 그곳으로 진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문신 오익창이 “이곳은 석벽이 깎아지른 듯하고 바닷물 빛이 감청색으로 신물(神物)의 굴이 있는 곳이니 범할 수 없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이를 받아들인 이순신은 당사도에 다가가지 않았다. 반면 조선을 도와 참전했던 명나라 진린(陳璘) 도독은 이후 이곳에 진을 친 뒤 거센 비바람과 천둥번개를 만났다.
이처럼 명량대첩 당시의 전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문집이 공개됐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명량대첩에 참전했던 사호(沙湖) 오익창(1557∼1635)의 문집 ‘사호집(沙湖集·사진)’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오익창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명량대첩에서 군수품을 운반하고 거북선 제조에 참여했다. 1773년에 간행된 사호집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료다. 노 소장은 오익창의 후손을 통해 사호집 원본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에 대해 “명량대첩 때 불과 전함 12척으로 왜군의 전함 133척을 격파한 장수들에 대한 지원 상황과 여러 위기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명량대첩 연구에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사호집에는 명량대첩 당시 전세가 불리해지자 사대부들이 배 1000여 척을 타고 여러 섬으로 몸을 피하려 했는데, 오익창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이순신 진영을 지원해 승리로 이끌었다는 일화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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