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를 가진 한 청년이 동물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장애를 치유하고 동물 전문화가로 데뷔했다. 4일 에버랜드 동물원으로부터 명예사육사로 임명된 신수성 씨(27·서울 용산구 한남동)는 발달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말이 어눌하고 남과 눈을 잘 마주치지도 못해 부모 속을 태웠지만 신 씨의 동물 사랑이 이를 극복하는 계기이자 수단이 됐다.
신 씨의 동물 사랑은 어릴 적 집에서 강아지와 토끼 오리 등 동물들을 키우면서 시작됐다. 주말마다 동물원을 찾던 신 씨는 고교 때부터는 동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물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대학도 고교 추천으로 청강문화산업대 컴퓨터그래픽과에 들어갔다. 2008년 졸업 후에는 에버랜드 동물원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찾은 횟수가 무려 500번이 넘는다.
동물들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궁금한 점을 사육사들에게 물으며 그림에 매진한 생활. 신 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놀이기구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동물원에서만 지낸다. 이제 한가족이나 다름없이 친해진 사육사들은 신 씨에게 동물을 직접 만지게 하고 설명도 해주면서 신 씨에게 자신감과 소통 능력을 길러줬다.
신 씨는 “동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다 보니 어디가 아픈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다”며 “이런 과정이 발달장애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과 사육사들과 친해지고 소통하면서 신 씨의 대인기피 경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낯선 사람은 물론이고 가끔씩 보는 친척들에게도 입을 다물던 신 씨가 이제는 먼저 말을 걸고 대답도 곧잘 하게 된 것.
신 씨는 올해 7월 한 달간 서울 종로구의 한 화랑에서 동물 전문화가들과 함께 자신이 그동안 그린 코끼리 침팬지 사자 등 동물 그림 265점을 전시했다. 그중 몇 작품은 호평을 받고 팔리기도 했다. 전시작들은 신 씨의 맑고 순수한 시선이 반영돼 생동감 있고 아기자기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머니 이정례 씨(51·재일교포)는 “수성이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화가라는 말까지 듣게 돼 정말 뿌듯하다”며 “사육사님들 한 분 한 분이 무척 따뜻하게 대해준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권수완 에버랜드 동물원장은 “신 씨의 경우처럼 동물을 매개로 사람과 동물 간 상호 교감을 이용한 치료가 최근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