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말 충남 금산농업기술센터 강당. 벤처농업대학 교수인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전무가 갑자기 수업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늘 넘치는 에너지로 열정적 강의를 이어가던 그였다. 당황한 학생들이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답니다. 더이상 수업할 장소가 없어요.”
정부 지원 한 푼 없이 11년간 지켜왔던 학교가 사라지다니. 학생들은 멀뚱멀뚱 눈만 깜박였다. 민 전무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만이 강당을 채웠다.
민 전무는 뜻을 함께하는 농업전문가들과 함께 2001년 이 학교를 세웠다. 위기에 빠진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 흙에 ‘벤처정신’을 심어 강소농(强小農) 1만 명을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금산의 한 폐교를 빌려 주말을 이용해 수업을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금산군은 2003년부터 금산농업기술센터 강당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농업 전문가들이 농업 경영과 마케팅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져 농민은 물론이고 공무원, 농업법인 및 식품기업의 대표와 직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11기까지 졸업생만 총 2000여 명. 비(非)인가 학교지만 벤처농업대학은 한국 농업의 꿈이 잉태되는 보금자리로 거듭나고 있었다.
올해 초 문제가 불거졌다. 감사원이 “공공기관의 시설을 민간단체에 무상으로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이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금산군 공무원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감사원의 지적을 따라야 하지만 벤처농업대학에 대한 애정이 컸다.
벤처농업대학은 한 학기에 90만 원의 수업료를 받는다. 그러나 공부에 소홀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로 받는 ‘실비’ 수준이어서 건물을 짓거나 시설을 빌릴 돈은 없었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 대기업 후원을 받는 건 ‘벤처정신’에 위배된다는 게 운영진의 판단이었다.
“그까짓 거 그냥 우리가 모아서 세우면 되지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운영진을 대신해 학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건물이 없다면 짓자는 것이었다. 당시 재학 중이던 11기가 중심이 됐다.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성금을 부탁했다. “학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졸업생들은 선뜻 돈을 냈다. 적게는 5만 원부터 많게는 500만 원까지. 400여 명이 낸 돈이 6억 원까지 쌓였다.
졸업생 중 한 명이 임야를 싸게 팔겠다고 나섰다. 건설업 경험이 풍부한 11기 졸업생이 공사를 맡았다. 7월 착공해 두 달여간 공사를 진행한 끝에 9월 15일 3300m² 땅에 교육장, 식당 등을 갖춘 ‘캠퍼스’가 완공됐다. 이달 초에는 12기 학생들이 입학해 새 캠퍼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제가 오히려 학생들한테서 ‘벤처정신’을 배웠습니다. 전 포기하려 했는데 학생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더군요. 초심으로 돌아가 ‘벤처농업정신’ 확산을 위해 더 열심히 강의해야겠습니다.” 민 전무는 이번 주말에도 새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밤을 지새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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