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시각장애 대학생, 韓銀 공채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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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7일 03시 00분


박기범 씨 “전공 달달외워”
안경 쓰고도 책 읽기 힘들고 뇌출혈로 왼쪽 손-다리 불편

“세계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일에 젊음을 불태우고 싶어요.”

올해 한국은행 종합기획직(일반직) 공채시험에 합격한 박기범 씨(23·사진)는 26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어눌하지만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시력 장애와 뇌병변 장애로 1급 장애 판정을 받은 박 씨는 몸의 왼쪽 부분이 불편하다. 왼쪽 손은 쓸 수 없고, 다리는 절면서 걸어야 한다. 시력은 높은 도수의 안경을 끼고도 돋보기가 있어야만 책을 볼 수 있고, 버스가 눈앞에 와야 번호가 보이는 정도다. 하지만 이런 장애를 딛고 박 씨는 다른 지원자들과 똑같은 전형을 거쳐 최종합격자 62명 가운데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은이 1급 중증 장애인을 뽑은 것은 박 씨가 처음이다.

장애로 학창시절에는 남들보다 더딜 수밖에 없었다. 전남 화순 능주고를 졸업한 박 씨는 “처음에는 전교 180명 중 160등이었다”며 “집중해서 공부하니 졸업 때 전교 5등까지 올랐다”고 소개했다.

한은 입사를 꿈꾼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제적인 화두가 되면서부터다. 성균관대 08학번인 박 씨는 “1학년 때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화제였다”며 “그때 금융에 관심이 생겨 한은의 금요강좌를 1년간 들었고, 한은이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은 입사 비결은 피나는 노력이었다. 남들처럼 시험 문제를 빨리 읽고 이해하기 힘들어 문제의 첫 문장만 봐도 대충 답이 그려질 정도로 전공서적을 많이 읽고 외웠다. 취업을 준비하는 1년 반 동안에는 하루 9∼10시간씩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한은 거시건전성 분석국에서 금융 안정 관련 업무를 해보고 싶다는 박 씨는 “저는 멀리 있는 것은 보이지 않고, 산을 탈 수도 없다. 하지만 걸을 수 있으니 산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장애로 인한 역경에 굴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박기범#시력장애#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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