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모델 선발대회에 나가 ‘청춘상’을 탔다. 5만 원짜리 상품권과 비타민을 받았다. 추억에 남겠다. 모든 회원들이 응원을 해 줘 고맙게 생각한다. 기분이 참 좋다. ‘노대’가 천국이다.”
지난해 2월 82세 일기로 작고한 임소윤 할머니(사진)의 일기장에는 보람찬 하루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할머니가 ‘천국’으로 표현한 ‘노대’는 광주 남구 노대동에 위치한 ‘빛고을 노인건강타운’을 의미한다. 이곳은 노인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수영장, 당구장 등 다양한 운동시설과 노래방, 댄스교실, 물리치료, 헬스장, 사우나 시설 등을 갖추고 2009년 6월 개관했다. 광주시 출연기관인 빛고을 노인복지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임 할머니는 2008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당뇨와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심신이 지친 탓에 몸은 쇠약해졌고 야위어 갔다. 어머니를 걱정한 막내딸 김미경 씨(51)는 어머니에게 집 부근의 빛고을 노인건강타운에 다닐 것을 권했다. 할머니는 3년 넘게 이곳을 다니며 웃음을 되찾았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우울증도 나아졌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정도로 노년(老年)의 삶은 활기로 가득했다. 임 할머니는 자원봉사와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어서 회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김 씨는 “건강타운에 다니기 시작한 2010년 일기부터 ‘노대’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어머님이 훨씬 밝아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임 할머니는 건강타운에 나갈 수 없었다. 3남 2녀를 둔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노대’에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 노년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예금통장 1개를 내놓았다. 통장에는 자식들에게서 받은 용돈을 아껴 쓰며 모은 1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가족들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빛고을 노인복지재단을 찾아 “회원들을 위해 써 달라”며 1000만 원을 기탁했다. 그로부터 9개월 뒤 임 할머니의 아름다운 기부는 ‘노인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부활했다. 할머니의 이름을 딴 ‘임소윤 갤러리’가 3일 빛고을 노인건강타운 문화관 1층에 문을 연 것이다.
100m²(약 30평) 크기의 갤러리에는 건강타운의 발자취와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했던 동료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갤러리 한쪽에는 일자리사업단에 참여한 노인들이 직접 만든 화분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코너도 마련됐다. 이홍의 빛고을 노인복지재단 원장은 “동료를 아끼던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매달 갤러리에 회원들이 제작한 서예, 그림, 사진 등을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칫 쓸쓸하고 외롭게 말년을 맞을 수 있는 노년기의 위험을 적극적인 취미활동으로 극복하고, 용돈을 아껴 뜻 깊은 기부를 하며 떠난 아름다운 노심(老心)이 빛고을 광주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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