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빚쟁이들은 학교로 찾아와 열한 살 태연(가명·19·여)이를 볶아 댔다. 빚쟁이 아줌마들을 피해 학교에서 도망친 그날 이후 다시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다. 2005년 가을 그렇게 초등학교를 그만뒀다.
학교를 나왔지만 돌아갈 집이 없었다. 엄마는 깨진 유리에 손을 크게 다쳐 식당 주방 일마저 그만뒀다. 집 보증금은 밀린 월세로 모두 사라졌다. 아빠는 태연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와 헤어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찜질방을 전전하다 겨우 구한 방은 서울 금천구의 고시원. 주인은 두 사람이 한 방에서 살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놨다. 엄마는 낮에 일자리를 구하고 밤늦게 몰래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한 사람 겨우 누울 수 있는 침대에서 엄마는 태연이를 아기새처럼 품고 잤다. 엄마와의 나이 차는 24살. 띠동갑 자매처럼 느껴지는 엄마의 사랑이 아빠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 갔다.
모녀의 끼니는 아침과 저녁 김밥 한 줄씩이 전부였다. 다섯 살 때부터 앓아 온 아토피 치료엔 식이요법이 중요하다는데 1000원짜리 김밥이라니…. 이따금 약국에서 타 오는 약으로 가려움을 견뎠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버텼는데 의사는 “내성이 생겨 더는 약으로 해결할 수 없다”라고 했다.
2006년 동사무소에 간 엄마가 기쁜 소식을 안고 왔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노숙인 쉼터에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쉼터에선 비슷한 처지의 모녀 두 쌍과 한 방에서 살아야 했다. 엄마는 미안해했지만 태연이는 대화할 식구가 생긴 게 좋았다.
지긋지긋한 아토피가 오히려 태연이에게 꿈을 줬다. 식품을 공부해 저렴한 식재료로 아토피를 치료할 수 있는 연구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그해 봄 태연이는 초등학교에 6개월여 만에 ‘복학’했다.
쉼터는 오후 10시만 되면 불이 꺼졌다. 태연이는 그 시간이 되면 책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규정상 모든 불을 꺼야 하지만 쉼터 원장은 태연이가 졸린 눈꺼풀을 비벼가며 공부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등을 토닥여 주고 돌아섰다.
엄마와 자신을 다시 설 수 있게 해준 도움의 손길들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과학특강은 빠지지 않고 들었다. 과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학원 한 번 다니지 않았지만 중학교 때 서울대 관악영재원에 합격해 과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고교 시절 본격적으로 ‘식품영양학과’를 목표로 달렸다. 3년간 학교 안팎에서 받은 상장은 모두 30개. 이 가운데 과학탐구, 발명과 관련된 상장이 19개나 됐다. 교내 과학경진대회 우승은 항상 태연이 몫이었다. 팀의 리더로 활동했다. 태연이의 학생기록부에는 ‘지진해일과 관련된 국내외 현황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탐구했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과학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엄마, 나 붙었어요.” 엄마는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목이 메었다. 7일 한양대 식품영양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단 한 명만 뽑는다는 ‘사랑의 실천’ 전형에서 14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사실 내심 불안했었다. ‘좋은 스펙을 가진 경쟁자가 많은데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사교육 한번 받지 못했는데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한양대 관계자는 “학생기록부 전체가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라며 “힘든 여건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였고 실력도 뛰어났다”라고 밝혔다.
등록금은 전액 면제. 이제 공부할 일만 남았다. 태연이는 다시 바빠졌다. 등록금 부담은 덜었지만 생활비는 직접 벌어야 한다. 10일 오전 10시. 태연이는 친구네 과일가게를 찾았다. 이곳에서 시급 4500원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휴일은 토요일 하루뿐. 손님을 받고 물건을 나르다 보면 오후 6시 퇴근시간이 된다. ‘2013학번 박○○’이라고 적힌 학생증을 받을 3월을 기다리며 태연이는 오늘도 치열한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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