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공동번역 3人 8년만에 ‘화려한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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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4일 03시 00분


경기중·고 동기동창 김성환-홍석우-김중근 ‘각별한 인연’ 관가 화제

2004년 가을. 보직 대기 또는 위원회 파견 같은 이른바 한직(閑職)에 있던 국장급 공무원 3명이 ‘남는 시간에 놀지 말고 공부하자’며 공동번역서를 냈다. 8년 뒤인 지난해. 전체 내용의 20%가 달라진 원서(原書) 개정판이 나오자 출판사는 이들에게 다시 번역을 의뢰했다. 그런데 3명의 지위는 ‘200% 정도’ 달라져 있었다. 두 명은 현직 장관이고, 한 명은 주요국 대사를 거쳐 금융기관의 상임감사가 됐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김중근 IBK연금보험 상임감사(전 주인도 대사)가 함께 번역한 ‘지성과 감성의 협상기술’(저자 리 L 톰슨·사진) 개정판 이야기다. 지난해 말 출간된 이 책은 원저자나 그 내용보다 공동번역자들의 화려한 면모와 인연이 출판계와 관가에서 더 화제가 되고 있다. 출판사도 책 광고 문구를 ‘성공가도를 달려온 그들이 함께 번역하여 권하는 성공하는 협상의 기술’이라고 했을 정도.

경기중·고교 동기동창인 이들 3명은 막역한 친구 사이. 대학과 고시 합격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김 상임감사는 서울대 무역학과(71학번)에 바로 합격했고, 대입 재수를 한 김 장관은 서울대 경제학과 72학번이다. 홍 장관은 대입에 낙방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74학번으로 김 상임감사와 같은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고시는 김 장관이 1976년 외무고시 10회로 가장 빨랐다. 그 다음이 김 상임감사(1978년 외시 12회), 홍 장관(1979년 행정고시 23회) 순이었다. 김 상임감사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 장관이 대입과 고시에서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김 장관이나 나는 ‘인품은 홍석우가 최고’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인품 덕분에 장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세 친구’가 다 잘나가는 게 서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김 상임감사는 지난해 주인도 대사에서 물러나면서 30여 년의 외교관 생활을 끝내야 했다. 인사권자인 김 장관은 주변에 “내가 직접 친구의 옷을 벗긴 셈이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하곤 했다.

2004년 첫 번역서와 2012년 개정판 간의 또 다른 차이는 이들 3명의 인세(印稅)에 대한 인식. 2004년에는 각자 부인들에게 “풍부한 인세를 안겨주겠다”고 큰소리치며 수익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 인세는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책 판매에 지위를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공동번역#동기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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