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력-기이편 완벽보존… “학문적 가치 국보급”
조선초기 목판인쇄본… 유족이 연세대에 기증
김춘추 어머니 시호 등 기존 판본과 달라 주목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선 초기 간행 목판인쇄본이 15일 공개됐다. 이 판본은 고고학자였던 고(故) 손보기 교수(사진)가 소장하던 것을 유족이 연세대 측에 기증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국보급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세대박물관에 따르면 손 교수가 소장했던 삼국유사는 5권(卷) 2책(冊) 가운데 앞부분(1∼2권)에 해당하는 ‘왕력편(王曆篇)’과 ‘기이편(紀異篇)’ 2권 1책이다. 왕력편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역대 왕족 족보에 해당하며, 기이편은 삼국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는 ‘흥법(興法·불교가 전래되고 흥성하는 과정)’ ‘의해(義解·고승들의 뛰어난 행적)’ 등을 다룬 3∼5권 1책의 조선 초기 인쇄본(국보 306호·개인소장)과 1512년 조선 중종 시대에 경주에서 간행돼 5권 2책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중종 임신본(壬申本·국보 306-2호)이다. 김도형 연세대 박물관장은 “이번 기증본은 중종 임신본보다 앞선 국보 306호와 시기가 비슷한 조선 초기 인쇄본”이라며 “국보 306호에는 없는 왕력편과 기이편이 거의 낙장 없이 완벽한 상태여서 국보급”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 교수 소장본 가운데 왕력편은 족보처럼 왕족의 인명을 담고 있어 글자 하나하나가 역사적 연구 자료로 효용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중종 임신본에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의 시호가 문정(文貞)이라고 돼 있지만, 이번 소장본에는 문진(文眞)으로 쓰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관장은 “하나하나 확인해주기는 어려우나 몇몇 대목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만간 연구결과를 모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고서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측면에서 왕력편과 같은 인명은 시기가 빠른 판본일수록 더 정확할 것”이라며 “이번에 공개된 소장본은 학문적으로는 물론이고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2010년 별세한 손 교수는 1922년 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해 평생 고고학 및 고인쇄학 연구에 매진한 학자다. 특히 1990년 사적 제334호로 지정된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의 발굴을 주도해 명성을 떨쳤다. 석장리 유적은 연대측정 결과 2만5000∼3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집터임이 확인돼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손 교수가 삼국유사 2권 1책의 조선 초기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으나 생전에 공개하지 않아 전모를 알기 힘들었다. 손명세 연세대 보건대학원장과 손경세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 등의 유족은 오랜 논의 끝에 손 교수가 관장을 맡았던 연세대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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