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 용사인 미국인 리처드 캐드월러더 씨(82·사진)가 당시 자신의 도움으로 화상을 치료한 한국인 소녀를 찾고 있다.
캐드월러더 씨는 1953년 5월부터 1년간 경기 수원 미 공군 제8전투비행단의 예하 부대에서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혹한의 어느 겨울밤 한 한국인 여성이 딸(12세로 추정)을 데리고 캐드월러더 씨가 지내던 부대의 막사를 찾아왔다. 인근 마을에 살던 모녀는 집에서 불을 피우다 휘발유통이 폭발하는 사고를 당했다. 소녀는 얼굴과 어깨, 허리까지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이웃 주민들이 검정 타르 같은 물질을 상처 부위에 발라 세균 감염도 심한 상태였다고 캐드월러더 씨는 회고했다. 여인은 눈물로 딸의 치료를 호소했다.
부대 측은 일단 응급 처치를 했다. 그 후 모녀는 매주 한 차례 부대를 찾아왔지만 얼굴 등 전신의 화상 흉터와 감염 부위를 치료하기엔 약품과 의료진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 육군 이동외과병원(MASH) 소속 헬기가 부대에 도착하자 캐드월러더 씨는 병원 관계자에게 소녀를 부산의 미군병원 화상병동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2시간 뒤 이륙할 때까지 소녀를 데려오라”는 답변을 들은 그는 통역과 함께 지프를 타고 칠흑 같은 밤길을 40여 분간 달려 수소문 끝에 소녀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겁에 질린 모녀를 설득해 가까스로 이륙 시간에 맞춰 헬기에 태울 수 있었다”며 “딸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 한 여인의 모정에 큰 존경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다른 부대로 옮겨 귀국을 준비하던 캐드월러더 씨는 영내를 거닐다 화상 치료 후 미군 트럭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와 기적 같은 재회를 했다. 그는 “소녀는 환한 표정으로 차창을 두드리더니 완치된 얼굴과 목을 가리켰다”고 말했다.
캐드월러더 씨는 최근 사연이 담긴 영상 편지를 국가보훈처로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보훈처는 ‘화상 소녀 찾기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제보 전화는 보훈처 통합 콜센터(1577-0606)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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