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옷 그녀 뜨면 불량상인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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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3일 03시 00분


소비자운동 대모 정광모 소비자연맹 명예회장 별세

12일 별세한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명예회장은 불량 기업과 악덕 상인들에게 경고하는 뜻으로 늘 빨간색 옷을 입고 다녔다. 11년 전 빨간 옷을 입고 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2일 별세한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명예회장은 불량 기업과 악덕 상인들에게 경고하는 뜻으로 늘 빨간색 옷을 입고 다녔다. 11년 전 빨간 옷을 입고 한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 소비자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명예회장이 12일 낮 12시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은 1929년 11월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태어나 이화여자중·고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1951년부터 평화신문과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에서 언론인으로 일했다.

고인은 늘 ‘빨간 옷’ 차림이었다. 불량 기업과 악덕 상인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별세 전날까지 빨간색 옷을 입었다.

고인은 1968년 여기자클럽 회장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소비자운동을 처음 접했다. 소비자 권익 개념이 없던 당시 한국사회에도 소비자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고인은 2년 후인 1970년 김병국 서강대 상경대학장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소비자운동 민간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을 창립했다. 1979년 소비자연맹 회장이 된 고인은 이듬해 한국일보를 퇴직하고 최근까지 회장으로 재직하며 소비자운동을 펼쳤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빨간 옷을 입은 고인이 남대문시장에 나타나면 불량 고추를 팔던 상인들이 고추를 숨기느라 바쁠 정도로 상인들에겐 무서운 존재였다”라며 “결혼도 잊은 채 소비자 권리를 찾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고인은 1996년 ‘소비자 보호의 날’을 제정하는 데 기여했다. 그해 12월 한국 여성운동과 소비자운동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소비자운동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소비자보호법 제정 등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고 2004년에는 한국여성지도자상 등을 받았다. 고인과 ‘40년 지기’인 김재옥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고인은 40년 전부터 수은이 들어간 여성 화장품 고발, 인공 색소가 들어간 소시지 불매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라고 말했다. 고인은 얼마 전까지 자신의 소비자운동 역사를 돌아보는 ‘회고록’을 준비했다.

고인은 대한에이즈예방협회 회장, 아시아·태평양 금연협의회 회장 등 에이즈 예방과 금연운동에도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다. 2010년에는 소비자 권익 보호 활동 40주년을 맞아 경원대(현 가천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소비자단체들은 고인이 43년 동안 소비자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장례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강 회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평소 어려운 이웃을 생각한 고인의 뜻을 받들어 유족들이 장지를 충북 음성군 꽃동네로 정했다”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정진현 씨(공연예술단체 ‘에이포이’ 대표) 등 조카 5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5일 오전 9시.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정광모#소비자연맹 명예회장#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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