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로 “(와 주셔서) 캄사합니다”라며 자리에 앉은 그의 앙다문 얇은 입술은 다부져 보였다. 영화 ‘저수지의 개들’, ‘킬빌’ 시리즈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50·사진)은 새 영화 ‘장고: 분노의 추격자’ 한국 개봉(3월 21일)을 앞두고 15일 오후 일본 웨스틴 도쿄 호텔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그의 뾰족한 콧날이 조명 아래서 더욱 도드라졌다. 하지만 강한 인상은 그의 놀랄 만한 ‘수다’가 이어지면서 여지없이 깨졌다.
‘장고…’는 1859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노예로 팔려 간 아내를 구해야 하는 분노의 로맨티시스트 장고(제이미 폭스)와 그를 돕는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 이들의 표적이 되는 잔인한 대부호 캔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세 남자의 대결을 그렸다.
이 영화는 1966년 프랑코 네로 주연으로 세르조 코르부치 감독이 연출한 ‘장고’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총잡이 장고와 그의 아내를 두고 벌어지는 이야기는 비슷하지만 타란티노의 ‘장고…’는 미국 남북전쟁 이전으로 무대가 옮겨지고 노예제와 엮여 각색됐다. “미국은 노예제로 지은 죄를 아직 씻지 않았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흑인과 백인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영화는 곳곳에서 흑인이 잔인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주인공의 대사에는 노예제와 KKK(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비밀 결사)에 대한 조롱이 담겼다. “장고를 도와주는 유일한 백인은 닥터 킹이죠. 그는 독일인이에요. 닥터 킹이 미국인이라면 미국이 역사에 사죄한다는 느낌이었을 거예요. 그게 싫었죠.”
이 영화의 백미는 장고가 백인들에게 맞서 총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다. 긴장되는 순간엔 점점 커지고 조용해지다 갑자기 ‘빵’ 터져버리는 배경음악도 특이하다. “액션과 음악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죠.”
어느새 정해진 시간이 지났다. 사회자가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그는 “질문을 더 받죠. 제 시간이니까”라며 저지했다. 쏟아지는 질문들이 흥미로웠던지 그의 얼굴이 빨개지고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의 영화들엔 복수 코드가 자주 나온다는 요지의 질문도 나왔다. “이번 영화는 복수 영화가 아닙니다. 장고의 여정은 로맨틱해요. 아내를 구하는 게 목적이지 백인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죠. 촬영 스케줄이 3주 더 늘어나 제 돈을 직접 투자해서 완성했을 만큼 남다른 영화입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을 언급하기도 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은 최근 20년간 제가 본 영화 중에 최고였어요. 6, 7년마다 아시아에서 한 국가가 선두에 나서 세계 영화시장을 주름잡는데 지금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간담회가 끝난다고 느낀 순간 그는 “이젠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1994년 서울에서 영화관을 가봤어요. 관객들이 전부 극장이 떠나가라 박수 치고 배꼽 잡고 웃더라고요. 그런 아시아 관객은 처음이었어요.” 또 남은 말이 있었다. “제가 뉴욕에 있는 한국 식당 ‘도하’ 공동 소유주예요. 비빔밥 먹고 싶으면 오세요.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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