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미국 싱어송라이터 에밀리 웰스는 영화 ‘스토커’의 대사에서 끌어온 조각들을 확장해 주제곡 ‘비컴스 더 컬러’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난 색깔이 됐어. 딸이 되고 아들이 되지.… 내 몸을 물밑으로 내려줘.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옷에 싸서.…’(‘비컴스 더 컬러’ 중)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28일 한국, 3월 1일 미국 개봉)가 들려주는 99분간의 기묘한 이야기는 이 어두침침하고 불길한 노래로 마무리된다.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에밀리 웰스(32)가 영화를 위해 만들고 부른 곡 ‘비컴스 더 컬러’다. 노래는 영화 첫 대목에서 주인공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브스카 분)가 뱉는 의미심장한 독백과 거울처럼 맞선다. ‘주제곡’으로서의 기능이 각별하다.
애국주의는 넣어두자. ‘스토커’는 음악만으로도 세계 영화 팬의 구미를 당길 작품이다. ‘블랙 스완’ ‘레퀴엠’의 클린트 맨셀이 배경 음악을 맡았고, 현대 음악의 거장인 필립 글래스의 곡이 두 개나 들어갔다.
주제곡을 부른 웰스를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영화 홍보를 위해 내한한 그는 “박찬욱 감독은 내게 음악을 맡기며 ‘에밀리 웰스가 아닌 에밀리 스토커가 되라’고 했다. 주인공 인디아 스토커에게 빙의된 듯 광기 어린 상태에서 곡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비컴스…’는 우울한 단조 곡이다. 신비로운 신시사이저 음향을 헤치고 등장한 여성의 건조한 목소리는 힙합 비트를 만나 랩으로 변했다가 애절한 아기 목소리로 화한다. 영화에 경착륙해 묘하게 들러붙는다. 웰스가 작사 작곡 편곡을 했다. 여러 사람이 부른 듯한 보컬도 다 웰스의 것이다. “박 감독과 지난해 2월 처음 만났어요. 제가 공연하는 로스앤젤레스의 클럽에 찾아와 ‘음악이 맘에 든다. 작업해보자’고 했죠. 전 그를 몰랐지만 영화광인 친구들이 박 감독 작품이면 무조건 하라며 등을 떠밀었죠.”
박 감독이 처음 웰스에게 던져준 건 영화에 등장하는 인디아 스토커의 독백 몇 줄. 그는 박 감독이 촬영 짬짬이 건네는 영상을 참고하며 곡조를 써갔다. 주로 전화로 논의했고 서너 차례 만나 토의했다. “박 감독은 강한 비트와 확신에 찬 듯한 목소리를 원했죠. 음악을 맡게 된 뒤에야 ‘올드보이’를 봤어요. 처음엔 잔혹성에 몸서리쳤는데 작업을 하면서 그가 폭력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웰스는 박 감독과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그를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웰스는 인디아 스토커와 닮아 있다. 공연 무대에 대개 혼자 오른다. 웰스는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타악, 신시사이저를 차례로 연주해 ‘루프 스테이션’이라는 장치에 녹음한 뒤 즉석에서 겹쳐 분신술 하듯 풍성한 음향을 만든다.
그의 연주는 기묘하고 외롭다. 텍사스, 인디애나, 로스앤젤레스, 뉴욕을 떠돌았고 열아홉 살 때 대형 음반사의 계약 제안을 거절했다. “유명세는 바라지 않아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밥 딜런, 레너드 코언, 니나 시몬을 좋아하지만 피나 바우슈(안무가)와 에곤 실레(화가)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죠. 예술가로서 저만의 이야기와 음악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해요.”
‘비컴스 더 컬러’와 클린트 맨셀의 음악이 담긴 ‘스토커’ 사운드트랙은 26일 발매된다. 웰스의 3집 ‘마마’도 25일 출시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