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그가 택한 곳은 많은 보수가 보장되는 대형 로펌 사무실도, 명예를 더 높일 수 있는 정치권도 아니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률구조공단 한쪽에 마련된 상담실이 그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작은 공간이다. 41년 만에 법복을 벗고 1월 퇴임한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68·사법시험 8회)은 “퇴임 후 로펌에 가지 않겠다”는 6년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2일 무료 법률상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날 오전 10시 첫 상담이 시작됐다. 이 전 소장은 ‘법률상담 자원봉사. 전 헌법재판소장’이라고 적힌 임시 명패를 앞에 두고 상담 신청자와 마주 앉았다. 재개발 아파트의 분양 계약 파기로 계약금을 손해 본 한모 씨(70)가 의뢰인이었다. 평생을 법대(법정 내 판사석)에서 내려다보며 판결하던 그는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한 씨의 말에 귀를 열었다.
한 씨는 “조합이 낸 광고만 보고 분양계약을 했지만, 광고가 사실과 달라 계약을 해지하자 조합 측이 1000만 원을 사업추진비 명목으로 떼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탈퇴신청서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서명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었다”며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민사소송을 내면 이길 수 있을지를 물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 씨의 말을 듣던 이 전 소장은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시냐”는 위로부터 했다. 그러고는 “서명날인한 탈퇴신청서 때문에 전부 돌려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민사소송 외에 경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거쳐 다른 식으로 구제받아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상담을 마친 한 씨는 “헌재 소장을 지내신 분이 친절하게 답변해주시니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상담을 마친 이 전 소장은 “국민의 애환이 서린 현장에 오게 돼 보람 있다”며 “서류로만 사건을 보다 생생한 어려움을 직접 듣게 돼 많은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 전 소장은 “로펌에서 많은 제의가 있었지만 6년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절했다”며 “공직 욕심은 없다. 사회에 봉사하며 젊은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이 전 소장은 “권력층보다 서민의 사회공헌이 더 활발한 것 같다는 외국인들의 지적을 곱씹어 봐야 한다”며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권력층의 보다 적극적인 사회공헌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는 데 대해서는 “헌재는 헌법소원과 위헌심판청구로 국민이 기본권을 보장받는 곳”이라며 “후임 인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소장은 매주 화·목요일 무료 법률상담을 할 예정이다. 전화(02-532-0132)로도 상담을 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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