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은 거대한 왜군을 무찌르기 위해 과학적인 전략과 거북선이라는 첨단 무기뿐만 아니라 ‘꿈’과 ‘점(占)’까지 활용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충무공탄신일(28일)을 앞두고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가 23일 개최하는 ‘인간 이순신 재조명’ 세미나에서 역사비평가 박종평 씨(사진)는 논문 ‘난중일기 속의 꿈과 척자점(擲字占·일종의 윷점)으로 본 인간 이순신’을 발표한다.
박 씨는 논문에서 난중일기 전체 1614일의 기록 가운데 나타난 40개와 이순신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조카 이분이 남긴 이충무공 행록의 3개 등 모두 43개의 꿈을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이 충무공은 인생의 부침이 많았던 1597년 18회(41%)로 가장 많은 꿈을 꿨다. 그해 2월 부산 출전 거부, 3월 삼도수군통제사 파직, 4월 백의종군, 5월 어머니 사망, 7월 원균 칠천량해전 패전, 8월 삼도수군통제사 복직, 9월 명량해전, 10월 둘째 아들 전사 등 길흉이 연속됐다.
충무공이 꾼 꿈은 공적인 꿈이 46.5%로 사적인 꿈(30.2%) 보다 많았다. 왜적의 침입을 예고(1592년 5월 28일, 1593년 8월 25일)하고 영의정 류성룡과 나라를 걱정(1593년 8월 1일)했다. 이순신은 사적인 꿈도 공적으로 해석하고 심상치 않으면 군대를 움직여 대비했다. 아들을 얻는 꿈(1593년 7월 29일)을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되돌아 올 것’으로 해석했다.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이 왜적 출현(1592년 5월 28일)을 알리자 실제로 출전을 준비했다. 충무공은 이와 관련해 “장수를 거느리고 노량 해상에 이르니 적이 과연 와 있었다”고 적었다.
충무공은 9개의 궁금증에 대해 14번의 척자점을 직접 쳤는데 그 결과는 모두 적중했다고 논문은 밝혔다. 1594년 7월 13일 영의정 류성룡의 사망설에 대해 점을 친 결과 점사(占辭)가 ‘의심하다가 기쁨을 얻는 것과 같다’고 나왔고 사망설은 머지않아 헛소문으로 판명됐다.
박 씨는 “이순신이 꿈을 해석하고 점을 친 것은 나라와 백성을 걱정해 닥쳐올 위기를 대비하고 극복하려는 목적이 강했다”며 “책임감 있는 장수이자 진인사대천명의 선비, 인간적인 모습을 지녔던 충무공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