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대를 다닐 때 별명이 (과목을 수차례 철회하고 결국은 낙제를 받았다는 의미의) ‘WWF(Withdrawal, Withdrawal, Failure)’였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14년 만에 보스턴에 돌아와 하버드대에서 강연을 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싸이(본명 박재상·36)는 8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 연단에 올랐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대에 이어 영미(英美) 양대 명문 대학 강단에 선 것. 한국 가수로는 처음이다. 그는 이날 재치 있는 입담과 진솔한 이야기로 하버드대 메모리얼처치에 모인 800여 명의 학생과 교수들을 열광케 했다.
그는 1996년 고교 졸업 후 미국에 유학 와 첫발을 내디딘 곳이 보스턴이어선지 유독 감회에 젖어 보였다. 2000년까지 보스턴 케임브리지에 머물며 보스턴대와 버클리음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찰스 강 건너 하버드대를 바라만 보면서 가지는 않았는데….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은 참 신기하다(Life is weird). 우리는 젊을 때 잘못을 하고 방황도 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살라(Be positive)’고 여러분께 꼭 얘기하고 싶다. 그러면 먼 훗날 꿈꿔 왔던 일은 꼭 이뤄질 거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스스로 최고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수로서 살아온 13년간 최선을 다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는 아주 유창하지는 않지만 또박또박한 영어로 가수로서의 도전 과정, 음악관, ‘강남스타일’ 성공의 뒷얘기, ‘젠틀맨’을 내놓은 과정 등을 익살스럽게 전했다. 그는 세계적 히트곡이 된 강남스타일의 성공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accident)’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속사 직원 중에 유튜브에 발표 곡을 올리는 일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녀가 올리자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다. 그것이 대박이 터졌다. 만약 담당 직원이 근무태만이었다면 나는 여기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는 후속곡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은 잘생기거나 멋진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고 전 세계인이 좋아했던 이유는 ‘재미(fun)’ 때문이라고 짚었다. 싸이는 “후속곡인 젠틀맨도 그 연장선상에서 만들었으며 목표는 빌보드 핫차트 10위권 진입과 유튜브 조회 1억 건 정도였다. 강남스타일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솔직히 수비형 작품”이라고 밝혔다. 젠틀맨은 발표 다음 주에 빌보드 핫차트 5위에 오른 뒤 조금씩 순위가 떨어졌다. 이날 순위는 지난주보다 7계단 떨어진 33위를 기록했다. 반면 유튜브 조회 건수는 3억 건을 돌파해 최단 기간 기록을 수립했다.
이번 초청 강연을 기획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소장 김선주 교수)는 200명 정도를 예상하고 ‘차이(Tsai) 오디토리엄’에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참석 희망자가 1500명 가까이 몰리자 800여 명 수용이 가능한 메모리얼 처치로 옮겼다. 이곳은 달라이 라마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등 유명인사들이 강연한 곳이다. 이날 참석한 학생들은 한국 등 아시아계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백인이 과반을 차지했다. 이곳에서 만난 하버드대 재학생 렌던 스트라우브 씨(19·생물학 전공)는 “학문적인 강의는 아니었지만 정말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학생들은 싸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폭소를 자아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강북스타일을 만들면 춤은 어떻게 할 거냐’, ‘말춤을 어떻게 개발했느냐’, ‘한국어 말고 영어로 미국에서 음반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싸이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을 연구하다 보니 말춤이 나왔다. 그리고 앞으로 영어는 열심히 배우겠다”고 답했다. 강연이 끝난 뒤 참석한 학생들에게 미리 준비한 비빔밥을 일일이 나눠 주기도 했다.
이날 강연의 사회를 맡은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석좌교수(한국학)는 “싸이는 현대사회의 글로벌 디지털 문화를 뒤흔든 현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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