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손끝으로 알아요, 천사같은 아이들의 미소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6일 03시 00분


네 식구가 모두 모인 오후, 어린이집이 끝나고 돌아온 아이들은 곧장 엄마 아빠 품에 안겼다. 카메라 앞에 선 부부는 “언젠가 애들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 왼쪽부터 전주연 씨, 아들 민석 군, 딸 다은 양, 김희정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네 식구가 모두 모인 오후, 어린이집이 끝나고 돌아온 아이들은 곧장 엄마 아빠 품에 안겼다. 카메라 앞에 선 부부는 “언젠가 애들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 왼쪽부터 전주연 씨, 아들 민석 군, 딸 다은 양, 김희정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엄마의 손가락은 더듬더듬 책가방의 지퍼를 찾아 내려갔다. 다섯 살배기 딸아이는 엄마를 지켜보다 가방을 넘겨받았다. 작은 손으로 능숙하게 가방을 열고 어린이집 체육복을 꺼냈다. 두 살배기 남동생 옷도 챙겼다. 아이는 자기 몸뚱이만 한 옷 뭉치를 들고 가 빨래통에 넣고 다시 엄마 곁으로 왔다. 앉아 있던 엄마는 눈을 맞추고 싶은 듯 아이 발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려 고개를 약간 들고 “옷 다 넣었어?”라고 물었다. 자랑스럽게 “응!”이라고 답한 아이는 엄마의 시선 방향에서 비켜 서 있었다. 》

보이진 않아도 엄마 아빠는 손으로 사랑을 느꼈다. 엄마는 아들의 양손을 감싸 쥐었고 다섯 살 딸은 안마사로 일하느라 지쳐 있는 아빠의 오른손을 잡아줬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보이진 않아도 엄마 아빠는 손으로 사랑을 느꼈다. 엄마는 아들의 양손을 감싸 쥐었고 다섯 살 딸은 안마사로 일하느라 지쳐 있는 아빠의 오른손을 잡아줬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차마 안아주지 못한 새 생명

김희정 씨(37·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눈동자는 맑고 컸다. 그의 눈은 세상을 딱 하루만 보았다. 출산 예정일보다 3개월 앞선 겨울 그는 세상에 나왔다. 출산 당시 1.7kg. 다음 날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낸 후 아기는 혼자 숨을 쉬지 못했다. 의사는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면 뇌에 부담을 줘 시신경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생명을 택했다. 산소호흡기가 어린 생명을 살려놨지만 시신경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는 서울맹학교에서 3년 후배인 아내 전주연 씨(32)를 만났다. 두 사람 다 불빛조차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졸업 후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만화영화 ‘마리이야기’였다. 영화관에 간 건 두 사람 다 처음이었다. 영화관 직원의 손에 이끌려 의자에 앉은 아내는 잔잔한 영화인데도 긴장한 듯 끝날 때까지 팔걸이를 꼭 잡고 있었다. 둘에게 스크린은 없었지만 대신 사방에서 퍼져 나오는 영화음악이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웅장한 진동이 벽과 바닥과 부딪히며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영화관에서 나오며 그는 짐짓 무뚝뚝하게 “잘 지내자”고 했다. 그렇게 둘은 4년의 연애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결혼사진엔 ‘2006년 3월 11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1년 후 새 생명이 찾아왔다. 남편과 집안에 임신 소식을 알리는 새댁이라면 기쁨에 겨워 가슴이 콩닥거리는 게 당연할 텐데 전 씨는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다. 양가 부모는 결혼을 마지못해 허락하면서도 “아이는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은 터였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베갯머리에서도 남편에게 묻고 또 물었다.

“시각장애는 물려지는 거 아니야?” “앞 못 보는 유전자가 없다가도 생기면 어떡해?”

그때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손을 뻗어 아내를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렸다. 부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기를 낳아 직접 기르겠다고 다짐했다.

2008년 4월 26일은 김 씨에게 어제처럼 또렷한 날이다. 첫딸 다은이(5)가 세상에 나온 날이다. 경기 안양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제나 저제나 출산 소식을 기다리던 중이라 휴대전화를 옆에 두고 손님에게 안마해 주던 참이었다. 장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흰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도로로 나섰다. 설렘과 걱정이 뒤섞인 걸 세상도 아는지 도로변 먼지와 꽃향기가 한데 섞여 느껴졌다. 어지러웠다. 땀범벅이 된 아빠에게 간호사가 정성껏 씻겨 데리고 온 아이는 우윳빛이었다고 한다. ‘안아 보시라’는 간호사 말이 귓가에 들렸지만 그의 발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간신히, 천천히 손끝을 아이의 살갗에 대 보았다. 따뜻하고 조그마한 살덩이가 움츠러들었다. 꼬물거리는 두 발의 감촉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경이(驚異)였다. 2.84kg. 마음속으론 볼을 비비고 힘껏 안아주고 싶었지만, 눈먼 아빠는 작은 생명 어느 한 곳이라도 부러질까 봐 두려웠다. 한 발 물러선 이유다.

약도 먹여줄 수 없는데… 엄마의 눈물

부부는 이전엔 마주치지 않았던 벽에 자꾸 부딪혔다. 체온계가 몇 도인지, 아기가 얼굴색이 어떤지 부부는 가늠할 수 없었다. 휴일 열에 들뜬 아이를 업고 더듬더듬 찾아간 약국 약사는 “요 눈금만큼 물에 타서 먹이라”고 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이가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1회 분량으로 만든 어린이 물약은 지금껏 찾아볼 수 없다.

아이는 분유 물을 맞출 수 없는 엄마 때문에 늦은 나이까지 젖을 먹었다. 한번은 유축기로 너무 오래 젖을 내다가 피가 섞여 나와 젖병 안으로 선홍빛 핏방울이 번져 나갔다. 아무렇지 않게 이 젖병을 냉장고 안에 넣어 두었던 엄마는 친정어머니가 이를 보고 기겁할 때까지 알아챌 방법이 없었다.

둘째 민석이(2)는 태어난 지 한 달 됐을 때 39도까지 열이 올라 입원했다. 부부는 병실에서 죽을 받아와 먹여줄 수도, 화장실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할머니가 나서야 했다. 아이가 잠든 새 더듬어 보니 조그만 팔에는 기다란 바늘이 꽂혔고 이를 통해 네댓 개의 약품 호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아이의 아픔을 손으로 느껴야 했던 부부의 뺨에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시각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빨리 큰다는 말이 있다. 돌이 조금 지나 다은이가 밥을 먹기 시작할 때. 딸아이 입을 향한 엄마의 숟가락질은 항상 빗나가 수저가 아이의 볼을 찔렀다. 그때마다 고사리손은 숟가락을 잡아 자기 입으로 넣었다. 엄마는 기뻤다.

“사람들이 ‘얘는 누구 닮아서 예쁘냐’거나 ‘아기가 잘 웃네요’라고 하면 ‘잘 웃는다는 게 뭐지?’라는 생각을 해요. 다른 엄마 아빠들은 아이 눈을 마주치고 까꿍 놀이도 해줄 텐데, 저는 아기의 표정조차 모르죠. 하지만 이것도 내 몫이다,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조금 더딜 뿐… 행복 향한 큰 걸음

아이는 부모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천천히 알게 됐다. 싫다는 뜻으로 고개를 흔들어도 엄마 아빠는 알지 못했다. 다은이가 15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아빠 손을 끌고 가더니 물통 위에 올려놓으며 열어달라고 했다. 아이는 더이상 손가락을 가리키는 방법으로 뭔가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빠는 그때 ‘내 눈이 안 보인다는 걸 아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용하게 찾아온 깨달음이었다. ‘내가 앞이 보였다면 손가락으로만 가리켜도 알아서 도와줬을 텐데.’ 미안함이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눌렀다.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어달라며 가져오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림책만큼은 읽어주리라’ 단단히 마음먹었다. 아이들의 책을 들고 가 친구나 친척들에게 읽어달라고 했다. 들리는 문장 하나하나를 점자로 다시 만들어 그림책 각 페이지에 붙였다. 한글 낱말카드 각 장에도 점자로 따로 쓴 단어들을 다시 붙였다.

드디어 엄마는 손가락으로 그림책도, 낱말카드도 읽어줄 수 있게 됐다. 손끝에서 아기 돼지도 나오고 인어공주도 나오고 망태 도깨비도 나왔다. 아이의 환한 얼굴은 못 봤지만 ‘까르르’ 웃는 소리에 책 읽어주는 엄마는 힘이 났다.

한글공부 책에 있는 자음 스티커를 하나씩 떼서 붙이며 가르쳐주고 있는데 다은이가 물었다. “엄마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이게 ‘니은’인지 어떻게 알아?” “다 아는 수가 있어”라며 얼버무렸다. 맨 처음 스티커가 ‘기역’이고 그 다음에 있는 게 당연히 ‘니은’이라는 건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엄마는 “둘째 민석이는 아직도 가끔 내가 점자를 짚느라 그림을 가리면 짜증을 낸다”며 웃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는 아이들과 남편 밥을 챙겨 먹인다. 아빠는 날마다 애들을 씻긴다. 세수시킨 후 이를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다시 엄마 차례다. 다은이의 머리를 묶어주면 어린이집 갈 준비가 끝난다. 조금 더디지만 부부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손으로 만져서는 두 아이 가방이 똑같기 때문에 늘 다은이 가방은 벽걸이 오른쪽에, 민석이 가방은 왼쪽에 걸어놓는 센스도 생겼다. 어린이집 차에 태워 애들을 보내고 나면 오전 9시에 정부가 지원하는 시각장애인 활동보조도우미가 찾아온다. 엄마는 도우미와 함께 집을 치우고, 장을 본다.

아빠는 오후에만 일하는 안마사다. 처음에는 밤새워 일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불규칙한 생활을 접고 아이들과 함께 있어 주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2009년 6월 그는 시각장애인복지관 산하 안마센터로 옮겼다. 월급은 3분의 1로 줄었지만 좀 더 안정적이고 공인된 곳이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곤 오후 10시까지 손님의 팔다리를 주무른다.

오후 4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할 시간이다. 휴무일이라 집에 있던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나 더듬더듬 포대기를 집어 들었다. 양쪽 끈을 잡고 능숙하게 허리에 묶었다. 한 손에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아빠는 한 아이의 손밖에 잡을 수 없다. 딸의 손을 잡고, 아들은 등에 업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겐 10분 걸리는 거리지만 이 아빠는 30분 전에 집을 나섰다. 그래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왜 나는 앞 못 보는 부모를 만났을까’ 하고 생각하는 날이 오겠죠. 하지만 언젠가 애들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알아준다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걸 요만큼만 알아준다면 그걸로 행복하겠죠.”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Narrative Report#시각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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