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우리금융그룹 임직원과 미얀마 어린이들이 양곤의 한 놀이동산 풀밭에서 ‘작은 운동회’를 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학교가지 마! 돈이나 벌어와"
미얀마 소녀 듀자퐁(16·여)은 3년 전 들었던 이 말을 요즘도 꿈에서 경험한다. 양어머니는 학교에 다니던 듀자퐁을 공장에 팔아 넘겼다. 어머니가 공장 주인에게 받은 몇 달치 선불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빠져나올 수도 없었다.
듀자뿅은 올해 8학년이다. 미얀마에서 11학년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남들보다 입학이 3년 늦었다. 국가에서 모든 학비를 지원하는데도 양부모는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듀자퐁은 생부, 생모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한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양어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것만 알고 있다. 양아버지는 2년전 간경화로 숨을 거뒀다.
양아버지가 죽은 지 6개월 만에 듀자퐁의 엄마는 새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불교국가인 이곳 남성들은 처자식이 부담스러워지면 "나 승려가 될 거야" 한 마디만 남긴 채 절에 들어간다. 남겨진 자식은 여성의 몫이다. 남편이 간경화에 걸려 세상을 뜨거나, 출가를 하면 여성들은 그 자리를 대신해 줄 남성을 찾아 재혼하는게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9살이 돼서야 동네 친구들의 소개로 최수영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육센터를 찾아갔다. 방치된 채 자란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최 선교사는 부모를 설득해 그녀를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3년 전 최 선교사가 잠시 한국에 갔을 때 듀자퐁에게 다시 시련이 닥쳤다. 양부모가 13살 된 그녀를 공장에 팔아넘긴 것이다. 미얀마에 돌아온 최 선교사는 몇 달 치 선불금을 대신 갚아주고 소녀를 공장에서 빼내 다시 학교에 다니게 했다.
듀자퐁은 현재 양부모 등 8식구와 함께 양곤 노동자거주지역에 살고 있다. 쓰레기 침출수가 넘쳐나는 물가 위에 지어진 대나무집이 그녀의 보금자리다. 요즘 듀자퐁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최 선교사의 교육센터에서 영어 수학은 물론 예체능 교육도 받는다. 간호사가 꿈인 듀자퐁은 "내겐 '배움'이 유일한 희망이다. 간호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된다면 간호보조원 자격시험을 준비해서 병원에 취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말이 되면 이 교육센터는 2층짜리 새 건물에 둥지를 튼다. 우리금융그룹은 1억 원을 지원해 저소득노동자들이 밀집한 양곤 흘라인따야에 150여명이 다닐 수 있는 새 교육시설 '우리 해피 비전 센터'를 짓고 있다. 기존의 교육센터는 노후화돼 썩은 빗물과 쓰레기 침출수가 흘러들어와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불편을 겪었다.
우리금융그룹 13개 계열사에서 모인 임직원 35명은 기아대책과 손잡고 지난달 29일부터 나흘 동안 미얀마 현지를 찾았다. 봉사 첫날 직원들은 골격만 갖춘 비전센터에 벽돌을 쌓고 페인트칠을 하며 일손을 도왔다.
봉사단은 정서적 교감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준비했다. 작은 운동회, 한국음식 체험, 합창 대회 등이 그것. 자녀를 둔 40대 가장들은 "내 아이에게도 이렇게 해준 적이 없다"고 말하며 미얀마 어린이들을 위해 서툰 솜씨로 파전을 부치고, 떡볶이를 만들었다. 피구경기 할 때는 마치 자신의 자녀가 참여한 듯 "내 새끼 잘한다"고 목청 높여 응원하는 직원도 있었다.
김진국 우리금융지주 부부장(51)은 마지막 날 봉사단 앞에 나와 활동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말로 하지 못한 소감은 그가 적어낸 활동일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하얗게 칠한 센터 벽면처럼 해맑은 어린아이들이 꿈을 갖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으면 우리들의 미션은 대성공! 누군가에게 나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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