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주네덜란드 대사(사진)는 지난해 네덜란드 교과서들을 뒤적이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들여다본 교과서에는 ‘한국은 바다를 면하고 있어 수산업이 중요하고 값싼 임금으로 손질된 생선이 판매된다’는 설명 두 줄밖에는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12쪽, 일본은 4쪽,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들도 3쪽이나 그 나라의 역사 등이 소개돼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외교부 안팎에서 화제가 된 이 대사의 ‘네덜란드 교과서에 한국 알리기 사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주네덜란드 대사관 직원들은 이 대사를 중심으로 치밀한 ‘사업 계획’을 세워 네덜란드 공략에 나섰다. 우선 교과서 발간 주기를 파악해 관계자들을 접촉할 최적의 타이밍을 골랐다. 교과서 내용이 결정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 만나야 할 대상들을 좁혀나갔다. 일선 학교와 교육부, 출판사 등을 찾아다니며 담당자를 찾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하멜의 고향인 호린험 시의 협조를 요청했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지원을 부탁하는 등 한국에 우호적인 인맥도 총동원했다. “네덜란드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그 덕분에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는 식으로 네덜란드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출판사 사장들에게는 “한국의 성공적인 발전모델을 소개하면 책이 잘 팔릴 것”이라고 구슬렸다. 유럽 사람들이 숫자와 통계를 좋아한다는 점도 적극 활용해 한국의 경제발전 속도,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자료와 순위 등을 상세히 곁들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A출판사는 올해 9월부터 고교 역사과목 시험준비서에 한국사를 기술하기로 했다. 2014년 상반기까지는 3개 교과서가 한국을 소개하는 내용을 추가할 계획이다. 호린험 시의 17개 학교는 올해 9월부터 아예 한국에 대해 따로 수업을 하게 된다. 1년여 만에 이뤄낸 이 성공담은 최근 공관장회의에서 소개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동료 대사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 대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그동안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교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성과”라고 강조했다. 대사관이 “네덜란드 교과서를 바꾸겠다”며 협조를 요청하자 한 교포 청소년은 네덜란드 교과서를 전부 분석해 이미지 자료와 함께 대사관으로 보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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