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천재적 음악가 정추 선생(사진)이 13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던 고인은 이날 알마티 시내의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운명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1923년 전남 광주 부호의 집안에서 태어난 정 선생은 1940년대부터 23년간은 남한 국민으로, 13년은 북한 인민으로, 17년은 무국적으로, 16년은 옛 소련 공민으로 지낼 정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7세 때 작곡할 정도로 천재적 음악 재능을 지녔던 그는 1946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초기 서기장을 지낸 형 정춘재 씨를 따라 월북했고 1953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음대에 유학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4대 직계 제자로 알려졌으며 대학 졸업 작품인 ‘조국’은 차이콥스키 음대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만점을 받았다.
정 선생은 1957년 모스크바에서 김일성 독재를 비판하는 운동을 주도하다 도망자 신세가 된다. 소련은 그를 체포 송환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하고 절충안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유배를 보냈다. 반면 정 선생과 함께 공부하던 친구 김원균(2002년 사망)은 김일성 반대 시위에 동참하지 않고 북한에 돌아간 뒤 음악계를 주도하면서 최고 음악가 반열에 올랐다. 김원균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작곡했고 김일성훈장과 함께 인민예술가 등 받을 수 있는 모든 칭호를 받았다.
비록 유배됐지만 정 선생의 음악적 재능은 여전히 빛을 발해 현지 음악계의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카자흐스탄 음악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은 60곡에 이른다.
정 선생은 북한의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망명한 남로당의 마지막 총책 박갑동 씨와 힘을 합쳐 1992년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을 결성해 사망할 때까지 의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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