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독재에 저항… 천재 음악가 정추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4일 03시 00분


유배지 카자흐서 작품 활동

비운의 천재적 음악가 정추 선생(사진)이 13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던 고인은 이날 알마티 시내의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중 운명했다고 유족이 전했다.

1923년 전남 광주 부호의 집안에서 태어난 정 선생은 1940년대부터 23년간은 남한 국민으로, 13년은 북한 인민으로, 17년은 무국적으로, 16년은 옛 소련 공민으로 지낼 정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7세 때 작곡할 정도로 천재적 음악 재능을 지녔던 그는 1946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초기 서기장을 지낸 형 정춘재 씨를 따라 월북했고 1953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음대에 유학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4대 직계 제자로 알려졌으며 대학 졸업 작품인 ‘조국’은 차이콥스키 음대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만점을 받았다.

정 선생은 1957년 모스크바에서 김일성 독재를 비판하는 운동을 주도하다 도망자 신세가 된다. 소련은 그를 체포 송환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거절하고 절충안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유배를 보냈다. 반면 정 선생과 함께 공부하던 친구 김원균(2002년 사망)은 김일성 반대 시위에 동참하지 않고 북한에 돌아간 뒤 음악계를 주도하면서 최고 음악가 반열에 올랐다. 김원균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작곡했고 김일성훈장과 함께 인민예술가 등 받을 수 있는 모든 칭호를 받았다.

비록 유배됐지만 정 선생의 음악적 재능은 여전히 빛을 발해 현지 음악계의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카자흐스탄 음악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은 60곡에 이른다.

정 선생은 북한의 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망명한 남로당의 마지막 총책 박갑동 씨와 힘을 합쳐 1992년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을 결성해 사망할 때까지 의장을 지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음악가 정추#별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