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적 같다? 네일숍 다니며 女心 캐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 케이스 디자인팀 남성 4총사

숱한 스케치와 회의를 거쳐 탄생시킨 제품들에 둘러싸인 네이처리퍼블릭 디자인팀의 김태민 과장, 정석재 팀장, 김완태 윤동진 디자이너(왼쪽부터). 여심을 훔치는 앙증맞고 기발한 화장품 용기 디자인은 의외로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이들 남성 디자이너 사총사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숱한 스케치와 회의를 거쳐 탄생시킨 제품들에 둘러싸인 네이처리퍼블릭 디자인팀의 김태민 과장, 정석재 팀장, 김완태 윤동진 디자이너(왼쪽부터). 여심을 훔치는 앙증맞고 기발한 화장품 용기 디자인은 의외로 감수성 풍부하고 예민한 이들 남성 디자이너 사총사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화장품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이 만든 앙증맞은 다람쥐 모양의 ‘프렌즈 핸드크림’이 최근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케이스가 돋보인다. 도토리를 물고 있는 동그란 다람쥐 모습, 핸드백 속에 쏙 들어가는 크기, 휴대전화 이어폰 구멍을 막는 데도 쓸 수 있게 디자인된 새싹 장식까지 여심을 사로잡을 디테일을 두루 갖췄다. 이 케이스는 올해 초 화장품 업계 최초로 ‘iF 디자인 어워드’ 패키지 부문에서 ‘골드상’을 수상한 회사의 자랑거리다.

여기에 반전이 있다. 이렇게 깜찍한 케이스를 디자인한 주인공들이 덩치도 크고 수염도 삐죽삐죽한 ‘상남자’(남자 중의 남자)들이다.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네이처리퍼블릭 본사에서 디자인팀 사총사인 정석재 팀장(37), 김태민 과장(35), 김완태(29) 윤동진 디자이너(28)를 만났다. 남자들이 여성용 화장품 케이스를 디자인하는 건 흔치 않다. 정 팀장은 “다양한 스타일의 디자이너들을 찾다 보니 타사에 비해 남성 디자이너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화장품업계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 디자인팀도 늘 ‘전쟁 모드’다. 상품기획팀에서 제품 콘셉트가 정해지면 이를 타깃 연령층에 맞는 형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케이스 겉모습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디자인과 컬러를 정한다. 트렌드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브랜드숍의 특성상 한 해 만드는 디자인 아이템은 600∼700종에 이른다. 시간을 따로 정하지 않아도 수시로 곳곳에서 토론과 회의가 이어진다.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이들은 좋은 디자인을 위한 노력도 각기 다르다. 막내인 윤 디자이너는 네일숍을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여성들의 취미에 관심을 기울인다. 반면 사무가구, 화장품, 인테리어 소품과 휴대전화 등 다양한 디자인 이력을 가진 정 팀장과 김 과장은 구조적, 공학적 측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디자인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자연을 모티브로 한 제품을 만들 때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끊임없이 돌려보거나 방대한 해외 자료 조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같이 근무하는 여성 디자이너들은 “화장품 케이스 디자인하는 남자하곤 절대로 결혼 안 한다”고 말한다. 꼼꼼하고 예민한 데다 ‘오늘 화장 좀 덜 먹었는데?’라는 ‘돌직구’도 서슴없이 던지기 때문이다. 김 디자이너는 큰 덩치와 덥수룩한 수염 탓에 디자이너가 아니라 ‘산도적’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는 앙증맞은 ‘프렌즈 핸드크림’의 책임 디자이너였다. 요즘엔 올가을 출시할 ‘프렌즈 핸드크림 2탄’을 준비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 있을 때는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을 때다.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물결 모양의 독특한 뚜껑을 적용한 ‘슈퍼 아쿠아 맥스 수분크림’이 그런 예다. 2011년 출시 이후 총 300만 개 넘게 팔렸다. 김 과장은 “이럴 땐 자식을 낳아 잘 기른 것처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좋은 화장품 케이스는 단순히 고급스럽고 화려한 게 아니라 그 브랜드와 제품의 정체성을 가장 잘 구현해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 팀장은 “화장품 케이스는 상품의 첫인상인 만큼 디자인 작업이 재밌기도 하고 보람도 있다”며 “팀원들의 개성을 살리면서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유머가 있는 디자인을 계속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네이처리퍼블릭#케이스 디자인팀#남자#iF 디자인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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