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명이 이다지도 기구할까. 세자를 모시던 빛나던 시절은 나라를 뺏기며 사라졌다. 설움도 멈추기 전에 온몸이 해체돼 대한해협 건너 타향으로 끌려갔다. 그것도 모자라 지진과 화재를 겪으며 몸뚱이는 와르르 무너지고…. 80년 만에 어렵사리 고국 땅을 밟았지만 뒷방 객식구 대접. 그렇게 또 약 20년, 드디어 제자리를 찾을 서광이 비치고 있다.
경복궁의 동궁 ‘자선당(資善堂)’ 얘기다. 일제강점기 경복궁 수난사의 상징이던 자선당 유구(遺構·옛 건축물 흔적)를 원위치로 옮기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근 100년 만이다. 환수 문화재의 걸맞은 지위를 되찾아 줘야 한다는 뜻에서 문화재청은 물론 문화재위원회와 학계도 긍정적이어서 자선당 유구의 제자리 찾기 사업에 순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어진 성품을 기른다’는 뜻을 지닌 자선당은 원래 세종 9년(1427년) 당시 세자이던 문종과 세자빈의 침전으로 건립됐다. 근정전 동쪽에 있어 동궁(東宮)이란 별칭을 흔히 썼고, 세자도 동궁마마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한 차례 불타는 고초를 겪었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으나 1915년 일제가 일본으로 반출했다.
당시 조선 통치 5주년을 맞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는데, 경복궁 곳곳을 헐어 자재를 민간에 팔아넘기는 만행을 저지른 것. 이때 일본 사업가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가 동궁 부재를 사들여 도쿄로 가져가 재조립한 뒤 사설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0년도 안 돼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이 발생하며 기단(基壇·건축 터에 쌓은 단)과 주춧돌만 남고 모두 타 버렸다.
그렇게 자선당은 잊혀질 뻔했지만 김정동 목원대 건축과 교수(65)가 1993년 도쿄 오쿠라 호텔 정원에서 그 유구를 찾아냈다. 오랜 협상 끝에 오쿠라 호텔은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1995년 유구석 288개를 반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9년 자선당을 복원할 당시 환수된 유구는 건축 자재로 쓰이지 못했다. 화재와 방치로 손상이 너무 컸던 탓이다. 결국 경복궁 북쪽 구석 건청궁 옆에 쓸쓸히 놓여졌다.
최근 이를 원위치로 돌리는 것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환수를 이끌었던 김 교수는 “동궁처럼 건축물 유구를 환수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며 “복원된 자선당 인근으로 옮겨 경복궁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이 잊혀진 역사를 배우는 교육 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도 적극 찬성한다. 박영근 문화재활용국장은 “자선당이 상징성이 큰 만큼 기본 복원 방향에 동의한다”며 “절차적인 문제가 남아 있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비용 문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구 이전은 1억 원 안팎이 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청으로선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자선당 유구 환수 때 상당 비용을 댔던 삼성문화재단이 다시 나서면 모양새가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