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양팔에는 커다란 용 두 마리 문신을 새겨 넣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철거현장은 ‘직장’이었다. 이사를 거부하는 철거민을 주먹으로 때려 쫓아내는 건 ‘직업’이었다. 3년 전 폭력 등의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김모 씨(34) 얘기다.
26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천왕동 서울남부교도소 내 한 강의실. 43명의 재소자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변창구 교수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출소를 1년 앞둔 김 씨도 있었다. 이날 강연 주제는 영국의 유명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희곡 작품 ‘템페스트(Tempest·폭풍)’.
“동생 안토니오에게 공국(公國)을 빼앗긴 마법사 프로스페로는 12년 만에 복수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모든 걸 용서하죠.”
이 이야기를 들은 김 씨의 눈앞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의 주먹에 맞아 입술이 터지고 멍이 든 채 나뒹굴던 사람들. 김 씨는 수업이 끝난 뒤 “나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도 (프로스페로처럼) 복수를 꿈꾸고 있을까. 여기서 나가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하며 괴로워했다.
서울대는 이날부터 매주 금요일 같은 장소에서 10주 과정의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교실’을 연다. 재소자에게 ‘인생의 의미’를 돌이켜 볼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재범에 빠지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다.
올해 쉰넷인 한 재소자는 지방의 대학교수였다. 환경공단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기업에서 뇌물을 받은 죄로 이곳에 왔다. 이날 강의 도중 작품 배경인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나폴리’가 언급되자 그의 눈이 빛났다. “예전에 한 달 정도 머물렀던 나폴리의 풍경이 떠올랐다. 내년 10월 출소하면 꼭 다시 가 보고 싶다.”
변 교수는 강연 말미에 “여러분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일종의 유예기간 가운데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재소자는 조용히 메모지 구석에 영어로 ‘Life is journey(인생은 여행)’라고 적었다.
법무부 교정본부 사회복귀과 장종선 교정관은 “재소자들은 이번 강의를 듣고 많은 것을 느낀 표정이었다. 10주간의 수업이 끝났을 때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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