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해 질 무렵 강원 춘천시 우두동 충렬탑 인근 숲 속에서 판소리 가락이 울려 퍼졌다. 춘향가 가운데 ‘금타령’이다. 청아하면서도 구성진 소리는 고수의 장단 및 추임새와 어우러지며 허공을 메웠다.
소리와 장단의 주인공은 외국인 소리꾼으로 소문난 라이언 캐시디 한림대 교수(42·국제학부)와 그의 아들 김기인 군(10·금병초 3). 캐시디 교수는 캐나다인이지만 그와 한국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김 군은 한국 국적도 갖고 있다. 충렬탑 인근 숲은 이 부자가 판소리 연습을 하기 위해 자주 찾는 곳.
이 부자는 한국인에게도 쉽지 않은 판소리를 능숙하게 해낸다. 캐시디 교수가 판소리를 시작한 건 2010년 소지영 명창의 공연을 보고 판소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면서부터. 소 명창은 중요무형문화재인 성우향 명창의 제자로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 명창은 판소리 공연장을 자주 찾는 캐시디 교수에게 판소리를 권했고 그는 제자가 됐다. 캐시디 교수는 “한국 전통 문화에 관심이 많아 판소리에 입문하게 됐다”며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아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1997년 입국해 2002년부터 한림대에서 재직 중인 캐시디 교수는 사군자 그리기는 물론이고 검도(4단)에도 실력을 갖추고 있다.
김 군 역시 아버지의 권유로 2011년 소 명창의 제자가 됐다. 부자는 일주일에 한 차례씩 교습을 받고, 개별 연습은 틈나는 대로 하고 있다. 캐시디 교수의 주요 연습 장소는 이동하는 자동차 안이다. 마음껏 소리를 낼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 캐시디 교수는 “기인이가 한국어도 잘해 나보다 배운 기간은 짧지만 습득하는 속도는 훨씬 빠르다”고 귀띔했다. 부자는 판소리 책에 나오는 한자 아래에 한글로 음을 써 놓고 읽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한다. 청중에게 정확한 발음을 들려줘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다.
이 파란 눈의 부자는 6월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다문화부에 참가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캐시디 교수는 이달 말 서울 남산한옥마을에서 국악을 하는 외국인들과 함께 공연을 할 예정이다.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들과 같은 무대에 서는 날도 기다리고 있다.
김 군은 장래 희망이 경찰이나 군인이라면서도 판소리는 계속 배울 계획이다. 그는 “한자가 너무 많은 게 어렵지만 이제는 괜찮다. 예전에 학교 장기자랑에서 판소리를 했더니 친구들이 놀라면서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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