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군 완도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인 소안도. 광복절(15일)을 이틀 앞둔 13일, 섬 전체는 ‘태극기 물결’을 이뤘다. 선착장인 소안항에서 면사무소에 이르는 도로와 마을마다 태극기가 펄럭였다. 소안항일운동기념공원에 세워진 높이 25m 국기 게양대에도 태극기가 힘차게 나부꼈다. 공원에 모인 주민과 뭍에서 온 어린이들의 손에도 태극기가 들려 있었다.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68년 전 광복의 의미를 되새겼다.
완도군은 이날 365일 내내 태극기가 휘날리는 소안도를 알리는 행사를 가졌다. 김종식 군수는 “선열들의 뜨거운 조국애가 면면히 이어져온 항일의 땅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물결처럼 퍼져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연중 국기가 나부끼는 ‘태극기 마을’은 지난해 8월 14일 처음 탄생했다. 섬 전체 15개 마을 1361가구가 매일 태극기를 게양했다. 태극기와 게양대, 무궁화 모양의 국기봉 등은 주민들이 마을기금으로 마련했다. 가정마다 6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자치단체 지원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이라서 태극기가 2, 3개월이면 찢어지기 때문에 교체 비용은 군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쟁의 근거지였다. 지금까지 20명의 건국훈장 수훈자를 배출해 전국 면 지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된 주민이 있으면 남은 주민들은 그들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을 정도로 의리가 깊었다. 황영우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장은 “소안도가 ‘항일 성지’임을 보여주기 위해 주민들이 태극기 섬으로 가꾸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며 “번영회는 무궁화 헌수운동을 벌여 섬 곳곳에 나무를 심고 무궁화동산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소안도는 전남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섬사람들이 일찍 외부세계에 눈을 떴다. 1900년대에 서당과 야학을 세우고 신교육을 시작해 선각자가 많았다. 반일비밀결사단체 수의위친계(守義爲親契), 배달청년회 등을 만들어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벌였다. 1905년 동학군에 동조한 이준하 열사는 일본인들이 세운 인근의 당사도 등대에 잠입해 일본인 4명을 살해하면서 독립투쟁의 불을 지폈다. 1920년대에는 6000여 명의 주민 중 800명 이상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받기도 했다. 1923년 설립된 사립 소안학교는 일본의 국경일을 지키지 않고 일장기를 내걸지 않는 등 저항정신을 가르치는 ‘항일의 산실’이었다. 심만섭 소안면장은 “매년 당사도 왜인 등대 습격사건을 재현하고 전국항일학생문예백일장대회를 여는 등 2004년부터 ‘항일’을 소재로 축제를 열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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