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 많은 속눈썹, 또렷한 이목구비의 얼굴은 입체적이었다. 다이어트를 하는 한국 여배우와 달리 풍만한 몸매는 더 입체적이었다. 그 덕분에 그의 존재감은 평면 스크린에서 도드라졌다. 야생의 관능미를 온몸으로 뿜고 있는 배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바라: 축복’의 주인공 샤하나 고스와미(27)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신데렐라다. 부탄 영화가 이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것이 처음이고, ‘라원’(2011년) ‘미드나이트 칠드런’(2012년) 두 편의 영화가 필모그래피의 전부인 외국 신인급 여배우가 부산의 여왕으로 등극한 것도 이례적이다.
‘바라: 축복’은 인도 카스트 제도의 차별 문제를 다룬 영화다.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에서 만난 고스와미는 영화의 주제에 대해 얘기하며 “내 피부는 검은 편이다. 인도에서도 하얀 피부를 좋아하는데 세상에서 차별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고스와미가 연기하는 릴라는 인도 전통춤을 배우는 무희다. 릴라는 하층계급 청년 샴(다비시 란잔)에게서 여신상의 모델이 돼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여신상이 완성될수록 둘 사이의 사랑도 자란다. 샴의 아이를 갖게 된 릴라는 결혼하자고 하지만 천민인 샴은 여건이 안 된다. 릴라는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비난이 무서워 평소 그를 흠모한 지주를 유혹해 결혼하려 한다.
영화는 티베트 불교의 영적 스승이자 수행자인 키엔체 노르부가 연출해 화제를 모았다. 노르부 감독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리틀 부다’(1994년)의 고문을 맡은 것을 계기로 영화에 입문했다. 그는 데뷔작인 ‘컵’(1999년)으로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고, ‘나그네와 마술사’(2003년)로 주목받았다. 이번이 세 번째 장편 영화다. 동굴에서 수행 중인 그는 부산영화제에는 불참했다.
고스와미는 노르부 감독을 이렇게 기억했다. “(수도자이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없어서인지 항상 야구 모자를 쓰셨어요. 한번은 모자를 벗었는데, ‘허전하다’며 머리 위에 유리병을 얹더군요. 연출법이 독특했어요. 침묵을 입 속에 가둬 놓기, 사시 만들고 눈동자 멈춰 있기 등을 주문하셨어요. 항상 행복을 보려고 하는 분이었고, 관찰력이 남달랐죠.”
할리우드에 이어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발리우드(봄베이+할리우드·인도 영화산업을 통칭하는 말)의 요즘 분위기는 어떨까. “발리우드 영화는 뮤지컬 같은 분위기가 대세였어요. 하지만 요즘은 현실의 문제에 뿌리내린 영화들이 나오고 있어요. 실험 정신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점이 좋아요.”
한국 영화광이라는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좋아하고, 이 영화에서 낙지를 통째로 삼킨 배우(최민식)의 용기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발리우드에서 한국 영화의 인기가 대단해요. 한국 영화를 베낀 영화도 많아요. 기술력과 내러티브가 대단하죠. 저도 김기덕 감독 영화에 나오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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