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악기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고요한 건물을 울렸다. 순서 없이 질문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엉켜 질문 내용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악보를 보며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아이들 뒤에 바짝 붙어 앉은 학부모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연습을 도왔다.
12일 오전 경기 수원시 권선구 에이블아트센터 5층. 13m² 남짓한 공간에 아이들 10명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트럼펫 등을 연주하고 있었다. 신체장애 및 발달장애, 자폐증세가 있는 이들은 15일 출범하는 ‘헬로! 셈(SEM)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장애아동들이 특별하고(Special) 뛰어난(Excellent) 음악가(Musician)라는 뜻에서 SEM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성전기는 장애아동의 자립을 돕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위해 에이블아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장애아동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삼성전기는 교육비와 악기를 모두 지원하고 정기공연 및 해외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말 첫 공연을 할 예정이다.
80여 명이 치열한 오디션을 거친 끝에 35명이 정식 단원이 됐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나이도 다양하고 연주 경험도 천차만별이다. 가정형편이 좋아 어릴 때부터 개인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방과후 수업에서 악기를 몇 번 만져본 게 전부인 아이도 있다. 보육시설에서 함께 생활하는 학생 3명도 오디션에 합격했다.
플루트를 연주하는 황은찬 군(10)은 고속철도(KTX) 기관사가 돼 승객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는 게 꿈이다. 음악과 기차를 좋아하는 그는 경기 광명시 집에서 연습실까지 오는 1시간 넘는 시간이 즐겁기만 하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어 성격이 급하고 오래 집중할 수 없지만 음악을 할 때만은 다르다. 그의 어머니는 “나도 은찬이를 가르치면서 플루트를 조금 연주할 수 있게 됐다”며 “바이올린을 배우는 은찬이 여동생과 함께 언젠가 셋이서 가족 앙상블 연주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숨을 불어넣어 트럼펫을 불던 현태현 군(12)은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다. 낯선 사람과 눈을 맞추거나 쉽게 어울리지 못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서면 달라진다. 현 군의 어머니는 “태현이가 악기 연주를 통해 몰입을 경험하고 무대에서 박수를 받자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다”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에이블센터 관계자는 “원래 트럼펫 연주자를 뽑을 계획이 없었지만 오디션에서 선보인 현 군의 연주 실력이 뛰어나 단원으로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박모세 군(16)은 이미 여러 차례 바이올린 경연에서 입상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아버지 박동명 씨(51)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탓에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며 “우리 아이 같은 장애아동을 그저 조금 부족하지만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폐증을 가진 아들을 둔 다른 학부모는 “다른 아이들은 10분만 가르치면 되는 것을 우리 아이는 100분을 가르쳐야 했다”며 “처음 아이가 힘들게 한 소절을 제대로 연주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 아들을 꼭 안아줬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오새란 씨(33·여)는 “10년 동안 장애아동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서 음악을 통해 안정을 찾고 신체도 건강해지는 사례를 많이 봤다”며 “지방에 사는 장애아동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한 학부모가 말했다. “누가 자신을 욕해도 미워할 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입니다. 이런 착한 마음으로 연주하는데 어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가 안 나올 수 있겠습니까. 연말 공연에도 꼭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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