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59)가 환경부 신설 기관인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 21일 부임했다. 최 원장은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4대강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참여형 생태인문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학자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행동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30년 넘게 학자의 길을 걷다 행정가로서 첫발을 뗀 최 원장을 18일 서울 청계천에서 만났다.
―행정가로의 전향은 어떻게 하게 됐나.
“거의 등 떠밀렸다.(웃음)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와 ‘생명다양성재단’을 갓 출범시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지난 정부에서 너무 깨져 버린 개발과 생태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변의 요구가 워낙 거셌다. ‘행정은 모른다’고 고사하려 하자 한 후배는 ‘언행불일치의 이기주의자’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환경 걱정하더니 일해야 할 때 발 빼려 한다고….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을 만드는 게 절실하다는 점에서 나도 그 후배와 생각이 같았다.”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최근의 큰 사회적 갈등은 대부분 개발과 환경의 교감이 막힌 사례다. 그로 인한 갈등 비용이 너무 크다. 4대강은 말할 것도 없고 밀양 송전탑 사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원전 입지 선정 문제를 보자. 생태적 관점에서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주판알만 튕겨서 밀어붙이다 보니 환경단체들로선 드러누울 수밖에 없다. 그럼 공사가 지연돼 국민 세금이 줄줄 새고 결국 공사를 억지로 마친 뒤에는 소모적 갈등이 계속된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국립생태원장으로서 어떤 해결책을 갖고 있나.
“국가가 500억 원 이상 드는 사업을 할 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적 관점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듯 생태타당성 조사를 해야 한다. 현재 환경영향평가는 요식행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매파(강경파)와 비둘기파(온건파)를 같이 불러놓고 토론을 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야 ‘최적의 안’이 나온다는 거다. 개발과 환경을 동등하게 놓고 따지는 게 궁극적으로 개발사업을 성공시키고 국민 예산을 아끼는 길이다.”
―선진국에도 그런 장치가 있나.
“미국은 환경청이 대통령 직속이어서 생태 문제에 대한 정책적 우선순위가 제도화돼 있다. 더 흥미로운 건 일본이다. 오래전부터 전국 관공서의 말단직원 상당수를 생태학 전공자로 채용하고 있다. 개발하려는 쪽이 이 말단직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예 사업 접수가 안 되도록 만든 구조다. 이런 식으로 자연을 변화시키려는 쪽에서 개발의 이유를 설득하는 게 정상인데 우리는 거꾸로다. 개발을 막는 사람이 안 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하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유엔 ‘국가복지’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기본 후생 수준인 인간복지는 180개국 중 28위지만 생태계복지는 거의 꼴찌인 162위다.”
―취지는 좋은데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4월에 국토교통부와 환경부를 함께 불러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왜 두 부처를 같이 부른 줄 아느냐. 개발과 보전이 계속 싸움만 했는데 이젠 함께 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얼마 전 국민대통합위원회 회의에서도 박 대통령은 나에게 ‘개발과 환경보전의 새 패러다임을 만드는 일을 꼭 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그게 대통령의 진심이라면, 그 원칙을 계속 지키시겠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
―생태가치를 따지다 보면 아무 일도 못 한다고 공격받을 텐데….
“생태가 개발을 가로막는 게 결코 아니다. 4대강 사업을 보자. 생태학자로서 원론적으로 반대했지만 나를 포함해 상당수 생태학자는 사실 4대강 정비에 찬성할 수 있었다. 우리 강들은 관리가 필요하다. 다만 생태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생태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생태학적으로 수용 가능한 4대강 사업을 하려 했다면 나 역시 찬성했을 거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또 어떤가. 사업 당시엔 내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 파괴의 측면이 있지만 도심 한복판에 물길이 생겨 서울시민이 그만큼 행복해지지 않았나. 나는 자연의 행복밖에 생각하지 못했는데 뜻밖에 거기 국민의 행복도 있더라.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반드시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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