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부터 안수민 ’빛으로 가는 길’, 강정인 ’nonsense’, 박신영 ’scapegoat’, 이선영 ’A rule can be bent’
지난달 말 스케치북을 든 20대 남녀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의 여러 재판정에 흩어져 들어갔다. 이들은 홍익대 미대생 31명으로 “형사·민사재판을 참관한 뒤 받은 인상과 느낌을 그려 달라”는 법원의 부탁을 받고 법정을 찾았다.
미대생 이선영 씨(29·여)는 ‘A rule can be bent(규칙은 구부러질 수 있다)’라는 독특한 제목의 그림을 그려 눈길을 끌었다. 이 씨는 “법정 곳곳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의 사연이 담긴 쪽지가 거친 회벽에 달려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면서 “법원이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사연에도 귀를 기울이는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강정인 씨(23·여)는 ‘nonsense’라는 제목으로 묘하게 기운 저울 그림을 선보였다. 저울 한쪽엔 나뭇잎이 올려져 있고 다른 한쪽은 비어 있는데, 저울은 빈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강 씨는 “재판을 처음 봤는데 이성적이면서도 사람이 진행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면도 많이 개입되는 것 같았다”면서 “법정이 진실을 밝히는 곳이지만 재판 당사자들에게는 자신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공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빛으로 가는 길’이라는 작품을 낸 안수민 씨(23·여)는 아동성범죄 재판을 참관했다. 안 씨는 “재판을 지켜보는 내내 피해자가 어둠을 벗어나 빛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법원이 약자와 정의를 위한 빛과 같은 곳이 돼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박신영 씨(23·남)는 그림에 ‘과녁’을 등장시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그는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황 속에서 한 사람이 모든 시선과 추궁을 감내하는 과녁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과녁이 쪼개져 있지만 정작 맞힐 수 있는 부분은 한 곳뿐이라는 점에서 표적수사 논란 등에 대한 비판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학생들의 그림 31점을 다음 달 1일까지 서울중앙지법 1층에서 전시하고 홍익대 미대 교수진과 함께 우수작 5점을 선정해 시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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