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제2회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 페스티벌’에서 청평중 학생들이 절도 있는 동작과 북 소리가 어우러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이날 대상을 차지한 뒤 “방황하던 우리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마음을 합쳐 이룬 결과”라며 기뻐했다. 삼성생명 제공
한 중학생이 안내자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입장한다. 그 뒤를 이어 다른 학생들도 무대에 오른다. 15명은 커다란 북 앞에 서고, 1명은 징 앞에 앉았다. 무대 뒷면에 잔잔한 영상이 흐른다. 이윽고 조명이 켜진다. 350여 명 관객들의 시선은 일제히 16명에게 쏠린다. 16명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흐트러짐도 없다. 정면만 바라본다.
“얼씨구 조옿다!”
북 소리가 무대를 채우기 시작한다. 채를 잡은 학생들의 손은 북의 가운데와 테를 번갈아 때리며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어떤 학생은 북에 얼굴을 거의 대다시피 한 자세로 채를 휘두른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설 때쯤, 5명의 학생이 앞으로 나오더니 꽹과리와 북, 장구를 잡고 한바탕 사물놀이를 벌인다. 10개의 북 소리가 무대 천장을 뚫을 듯이 치솟은 가운데 들려오는 사물놀이 장단. 관객들의 어깨도 들썩인다.
○ 북을 치면서 꿈을 찾다
무대에 선 16명이 눈부신 조명에도, 자신들을 지켜보는 700개 눈동자에도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던 이유는, 이들은 눈이 부시지 않았기 때문. 소년들은 대전맹학교에서 왔다. 이들이 올라선 무대는 2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열린 ‘제2회 사람, 사랑 세로토닌 드럼 페스티벌’이다.
‘사단법인 세로토닌(행복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 문화’가 2007년부터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든 ‘드럼클럽’이 이날 축제의 주인공이었다. 드럼클럽은 청소년들의 정서를 순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2011년 삼성생명이 후원을 시작했고 현재 전국 130개 중학교에 드럼클럽이 있다. 드럼 페스티벌은 드럼클럽 학생들이 실력을 겨루는 행사. 26개 학교가 예선에 참가했고 11개 학교가 본선에서 무대를 펼쳤다.
11개 팀 가운데 6번째로 무대에 오른 대전맹학교 팀은 올해 3월 드럼클럽을 만들었다. 이번 대회 예선을 앞두고는 열흘간 하루 5시간씩 연습을 했다. 같은 동작이라도 비장애인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평소 20분 서 있는 것도 힘들어하던 송한국 군(14)은 이제는 2시간 넘는 연습도 곧잘 버텨낸다. 그리고 꿈이 생겼다.
“더욱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해외에 나가 사람 많은 곳에 가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대전맹학교 팀은 예선 심사에서 특별 배려 없이 본선 무대 진출권을 따냈다. 그리고 이날 은상을 차지했다.
○ 방황도 북 소리에 훨훨
페스티벌 대상의 주인공은 청평중 팀이었다. 청평중 팀은 태극기를 활용해 박진감 넘치는 공연을 만들어냈다. 여름 방학을 포함해 공연 전까지 매일 6시간씩 맹렬히 연습한 결과다. 대상에 호명된 뒤 신규철 군(15)은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기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신 군은 스스로를 “화를 못 참고 말보단 주먹이 앞섰다”고 소개했다. 그런 신 군도 북을 치며 인내심을 배웠다. 팀원들이 같은 리듬을 만들어내며 약속을 지킨다는 것,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이 뭔지도 깨달았다.
많은 학교에서 드럼클럽 활동은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활용된다. 지난해 1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올해는 축하공연을 펼친 거창여중의 김현숙 지도교사(55)는 “학교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학생도 이곳에 들어와서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유 없이 방황하고 목적 없이 길을 헤맸던 날들은 북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학생들은 “북 치기는 ‘미친 중2병’ 치료에 제격”이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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