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작가 메릴린 로빈슨이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요? 달나라에 다녀온 것만 같더군요.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정말 기뻤지만, 제 작품 활동에 대한 격려라는 측면에서도 작가로서의 존재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 등이 공동 주최하는 제3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작가 메릴린 로빈슨(70)은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의 감정을 25일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26일 오후 4시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다.
‘하우스키핑’(1980년) ‘길리아드’(2004년) ‘홈’(2008년) 3편의 장편소설로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토크쇼에서 “그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언급해 화제가 된 작가이기도 하다.
“수상자로 선정되고 나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 영역본을 읽어 볼 기회가 있었어요.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수준 높은 작품이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에서 받은 것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11월 제가 참석하는 문학 세미나에서도 선생의 작품세계를 소개할 계획입니다.”
작가의 대표작인 ‘길리아드’는 개신교 목사인 존 에임스가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 작가가 살고 있는 아이오와 주의 마을 지명이기도 하다. 작가는 성서에서 치유와 재생의 공간(길르앗)으로 자주 언급되는 길리아드를 배경으로 미국 중서부 지역 초기 개척민의 삶을 그린 소설을 연작 형태로 발표해 왔다.
“길리아드가 위치한 중서부는 종교 개혁가이자 신학자인 장 칼뱅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 이민자 출신의 개신교 신자가 많이 정착했던 곳입니다. 아이오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을 계기로 중서부로 이사와 이들의 삶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이 지역을 무대로 한 소설을 구상하게 됐습니다.”
최근 집필을 마쳤다는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라일라(Lila)’ 역시 길리아드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에임스 목사의 아내 라일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했다. “소설 ‘길리아드’에서 30년쯤 거슬러 올라간 얘기가 될 겁니다. 저는 작품 속에서 여성을 많이 다루려고 노력해요. 할리우드 영화의 틀에 박힌 여성상에 대한 불만 때문이기도 하고, 남성상과 여성상의 균형 찾기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시적인 산문’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고도로 정련된 문장으로 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은 “로빈슨의 작품은 문장 하나하나가 즐거움이라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작가는 이런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제가 작품을 쓸 때 단어나 문장을 고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 아닐까요? 제가 의도한 표현이 아니거나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구절이 있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하는 편입니다.”
한국에서 절판됐던 대표작 ‘하우스키핑’과 ‘길리아드’ 한국어판이 시상식에 맞춰 재출간(마로니에북스)된 것에 대한 기쁨도 나타냈다. “책이 정말 예쁘게 만들어졌더군요. 박경리문학상 수상 덕분에 한국 독자들이 제 작품을 읽을 때 조금은 더 흥미를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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