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말레이시아의 어느 병원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태어난 날짜도 모르는 아이는 작은 광산촌에 살던 할머니에게 입양됐다. 처지가 비슷한 4명의 어린아이와 함께 살던 판잣집에는 물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화장실도 없었다.
그러나 소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꿈을 키웠고 2011년 언스트앤드영이 주는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인물이 됐다. 개인 자산 4억6000만 달러(약 4885억 원)로 동남아에서 손꼽히는 여성 부자 중 한 명이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싱가포르의 수질정화기업 하이플럭스의 올리비아 럼 대표(51)다. ‘물의 여왕’으로 불리는 럼 대표는 지난달 숙명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럼 대표는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여성들도 열정을 갖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오게 마련”이라며 “열정만 있다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똑똑했던 어린 시절
초등학생이 된 럼 대표는 처음으로 ‘차이’라는 것을 느꼈다. 다른 아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왜 다른 친구들 집에는 양변기가 있고 전기도 들어오는데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한 거죠”라고 묻자 선생님이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공부를 해야 하는 거란다.”
어린 럼 대표는 “한 번 보면 모든 걸 기억하고 이해할 정도라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의 영민함을 알아본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싱가포르에 가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럼 대표는 주머니에 단돈 10달러를 넣고 꼭 성공하겠다는 결심과 함께 싱가포르로 향했다. 지독하게 일하고 공부한 끝에 싱가포르국립대 화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저는 선생님의 말씀을 믿었고 늘 지식에 목말라 있었다는 점입니다.” ○ 글로벌 제약사 뛰쳐나와 창업
그는 글로벌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취업했다가 3년 만에 퇴직한 뒤 1989년 하이플럭스를 창업했다. 살던 집과 타던 차를 팔아 마련한 1만2000달러로 오토바이와 수(水)처리 장비를 샀다. 직원은 2명이었고, 특별한 기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인구가 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 사용량이 늘어갔습니다. 앞으로 물이 중요해질 것으로 판단해 해수 담수화 사업과 정수 시장에 주목했죠.”
하이플럭스는 처음에는 다른 기업을 대신해 수처리에 필요한 필터를 팔아주는 에이전트로 출발했다. 이후 연구개발(R&D)을 계속하며 수처리 분야 전반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1990년대 싱가포르 정부가 장래 물 부족에 대비하려는 ‘뉴워터(NEWater)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수처리 분야 기업에 인센티브를 준 것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하이플럭스는 친환경 수질 정화 기법인 멤브레인 처리 기술로 해수 담수화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멤브레인 처리 기술을 통해 하이플럭스가 더 큰 ‘리그’에 뛰어들 수 있었다”며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담수 플랜트 사업권을 따내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1994년 중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하이플럭스는 2003년에는 현지 담수화 사업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 “한국 기업과 협력할 기회 있으면…”
하이플럭스는 20년간 운영한다는 조건으로 2005년 싱가포르 최초의 해수 담수화 플랜트인 ‘싱스프링 담수화 플랜트’를 수주했다. 2008년에는 세계적인 유력 컨소시엄들을 제치고 알제리 마그타의 50만 t급 담수 플랜트를 수주했다. 올해 9월에는 싱가포르의 두 번째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완공했다. 중국, 중동, 북아프리카, 인도 등에 진출했으며 직원 2300여 명, 시가 총액 6억5000만 달러인 동남아 최대 수처리 업체로 성장했다.
럼 대표는 “하이플럭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특히 중동 지역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만큼 협력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황선혜 숙명여대 총장은 “럼 대표의 도전적인 삶 자체가 모든 여성들의 귀감”이라며 “하이플럭스와의 교류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