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내편 있다는 믿음이 자살 막는 터닝포인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5일 03시 00분


美 LA 정신건강국 자살예방전문가 김재원씨

“자살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를 금기시해서는 안 됩니다. ‘너 혹시 자살 생각하는 것 아니지? 관심받으려고 이러는 거지?’ 이런 식의 질문은 절대 금물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정신건강국에서 일하는 자살예방전문가 김재원 씨(41·사진)의 말이다. 그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자살예방 분야에서 일해왔다. 이번엔 한국생명의전화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7, 8일 대전 유성구 유성호텔에서 주최하는 ‘지역사회 청소년 정신건강과 자살예방 실천방안 워크숍’에서 미국의 청소년 자살예방 사업에 대해 발표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자살을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사연이 있다. 그걸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살 위험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왜 자살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 공감하며 들어주는 과정을 생략하면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줘도 소용이 없다. 무작정 “잠만 좀 자면 나아질 거야”라거나, “너는 공부도 잘하고 가족도 있는데 왜 자살 생각을 하니?”라고 해선 안 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교사들을 위한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코그니토(KOGNITO)’가 뜨고 있다고 했다. 자살 위험 증상을 보이는 청소년 아바타와 교사가 역할극을 통해 대화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질문을 하도록 도와준다.

한국 청소년 자살에선 ‘왕따’가 사회적 이슈였다. 김 씨는 “왕따가 청소년 자살률을 높일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학생도 많은데 이를 과소평가하고 왕따 자체를 원인으로 여기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에서는 1991년부터 자살자가 생기면 정부 차원에서 평소 행동과 주변환경 등을 조사해 원인을 찾는 ‘심리학적 부검’을 실시해 왔다. 지난해 아동청소년 자살자의 70% 이상은 우울증, 조울증 등을 앓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우울증 등이 있는 상태에서 힘든 일이 오면 그게 심화돼 자살을 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청소년들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대처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자녀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면 부모는 이와 비슷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주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말해주는 게 좋다. 이때 자신을 힘들게 만든 사람에겐 감정을 정확히 얘기하라고 해야 한다. 상대방은 내 감정을 모르는데 무작정 괴롭힘을 맞받아쳐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행동이 날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정확히 얘기해주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김 씨는 무엇보다도 아이가 자신을 걱정해주고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라도 내 편이 있다는 생각이 자살을 막는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자살까지 생각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세요.”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김재원#자살#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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