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하이드 가. 등에 형광색 플라스틱 폭탄이 묶인 한 여성이 전차 선로에 앉아 있었다. 배트맨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소년이 그녀의 몸을 묶고 있는 밧줄을 푸는 순간 구경꾼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소년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리들러’와 ‘펭귄’(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들)을 붙잡기 위해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배트맨 복장을 한 소년의 이름은 마일스 스콧(5). 이 소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가 이날 하루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담시티’로 바뀌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생후 18개월부터 백혈병을 앓아온 스콧 군의 꿈은 단 하나였다. ‘배트키드’가 되는 것.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 어 위시’ 재단은 올해 6월부터 병세가 호전된 스콧 군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시 당국자들과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원봉사자 1만2000여 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경찰서장을 비롯해 현지 언론도 발 벗고 나섰다.
이날 그레그 슈어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장은 현지 방송에 출연해 “악당 리들러와 펭귄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배트키드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등장했던 배트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도 시내의 한 호텔 외벽에 그대로 재연됐다. 이와 함께 방송사들은 악당이 도시에 출현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에 스콧 군은 특별 제작된 ‘배트카’를 타고 출동해 여성을 구해내고 은행을 털던 리들러를 체포했다. 펭귄에게 납치됐던 미국프로야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마스코트도 구해냈다. 연방검사는 스콧 군이 체포한 리들러와 펭귄에 대해 정식 기소장을 제출했고 현지 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고담시티 크로니클’로 이름을 바꿔 ‘배트키드, 도시를 구하다’라는 특별판을 배포했다. 또 에드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시청 앞 광장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는 ‘키 투 더 시티’를 수여하기도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말 멋진데, 마일스! 고담을 구해줘”라고 응원하는 메시지를 동영상 공유서비스 ‘바인’에 올리면서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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