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건축가 박철용 씨(52·사진)는 다음 주 시작할 공사를 두고 고객과 한창 의논하고 있었다. 적당한 가격을 흥정하고 견본을 이리저리 조립했다가 해체하는 모습이 여느 건축가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박 씨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 2008년 10월 당한 사고 이후다. 서울의 한 재건축 현장에서 지붕 아래로 떨어졌다. 3m 정도의 높이였지만 하필 허리가 아래쪽 시멘트 덩어리에 곧장 부딪쳤다. 10시간의 대수술을 마치고 눈을 뜬 그에게 담당의사는 “영영 걷지 못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척수장애’란 뇌와 신체 각 부위를 잇는 중추신경인 척수가 손상돼 감각 및 운동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척수장애인협회에 따르면 국내 척수장애인은 약 6만 명에 이르고 매년 2000명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박 씨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사랑의 집수리’가 계기였다. 사랑의 집수리는 장애인, 노인, 소년가장 등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2010년 겨울부터 그가 시작한 무료 집수리 봉사. 그 공로로 9월 한국척수장애인협회가 수여하는 ‘2013 자랑스러운 척수장애인 상’을 받았다.
그는 1996년 건축업에 뛰어들었다. 주로 전원주택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집만 전국에 60여 곳에 이른다. 사고 뒤 주위의 많은 이들이 “앞으로 절대 건축일은 못 할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담당의사의 판정에 이은 두 번째의 ‘절망 선고’였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현장으로 돌아왔다. 1년여의 고통스러운 재활을 마친 결과였다.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의무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를 일터로 불러냈다.
장애인이 되면서 얻은 것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휠체어를 타니 눈높이가 자연스레 내려갔다. 동시에 우리 사회 낮은 곳 이웃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장에 복귀하자마자 먼저 시작한 일이 바로 사랑의 집수리였다.
처음에는 마땅한 대상을 찾기도 어려웠다.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길 수차례. 결국 그는 자비를 들여 팸플릿을 만들고 지역 케이블방송에 출연하는 등 홍보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서울 경기 지역 주택 30여 곳에 경사로 만들기, 문턱 제거, 화장실과 보일러, 수도 수리봉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지체장애인에게 가장 시급한 일이 ‘이동권’ 보장이라고 강조했다. 계단을 경사로로 바꾸기만 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이렇게 다짐했다. “밖으로 못 나가서 평생 어두운 실내에서 사는 장애인이 많아요. 앞으로 사랑의 집수리를 통해 최대한 많은 장애인들을 세상과 연결해주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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