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창 청소용 로프는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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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일 고층닦기 여성전문가 김영미씨 ‘자활명장’ 선정

보건복지부 제공
보건복지부 제공
처음엔 모든 주변 사람이 고개를 내저었다. 키가 150cm도 안 되는 여자가 로프를 타는 건 힘들다고 했다. 그럴수록 김영미 씨(44·사진)의 오기는 더욱 발동했다. 몇 차례의 설득과 부탁 끝에 10층 건물 옥상에 올랐다. 밧줄 하나에 의지해 몸을 던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 순간 김 씨의 머릿속에 엄마가 돈 벌어오기만 기다리는 어린 세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를 악물고 한 달간 건물을 탔다.

김 씨의 직업은 청소부다. 단순히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이 아니다. 10층이 훌쩍 넘는 대형 건물의 유리창과 외벽을 청소한다. 많게는 일주일에 건물 서너 개를 거뜬히 닦는다. 이제 그는 제주에서 건물 외벽 로프 작업이 가능한 유일한 여성 청소전문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목숨을 내걸고 빌딩 청소를 하기로 결심한 건 2009년부터였다. 아들 셋 딸린 기초생활수급자 김 씨에게 15만 원이 넘는 고공청소 일당은 정말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는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식당 일, 가사도우미, 대리운전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가난에서 벗어나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마음 하나로 줄을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김 씨는 기초생활수급 상태를 벗어나 자활에 성공했다. 사계절을 불문하고 40채가 넘는 고층건물을 오르내리며 열심히 청소한 결과다. 그는 경제적 고충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해 “의지가 있다면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여자라고, 애 엄마라는 이유로 못할 일이 세상에 없다. 이게 바로 수십 번씩 공중에 매달려 얻은 결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발했다.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2013 자활 유공자 및 수기·사진공모 시상식’에서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제5대 자활명장의 영예를 안게 됐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가난하고 평범한 애 엄마인 나도 잘 살아간다.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의 도전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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