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 팔아 이웃집 쌀독 몰래 채운 할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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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순씨 등 36명-단체 ‘국민추천포상’

올해 1월 24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청 마당에 쌀 포대를 가득 실은 화물차가 들어섰다. 20kg짜리로 100포대에 이르는 양이었다. 쌀을 가져온 이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 대신 “홀몸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쌀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청 측이 간곡하게 신원을 알려 달라고 요청한 뒤에야 나정순(72)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털어놨다. 근처 용두동의 명물인 ‘나정순 할매 주꾸미’ 식당의 창업자였다. 30여 년 전 좁고 허름한 가게에서 시작된 주꾸미 장사는 이제 용두동 주꾸미 맛집 가운데 원조로 자리 잡았다.

나 할머니의 선행은 10여 년 전에 시작됐다. 조금씩 돈이 모일 때마다 구청이나 동주민센터를 찾아 기부했다. 쌀을 직접 구입해 구청에 갖다 놓기도 했다. 그렇게 10년 넘게 기부한 쌀과 성금은 약 4100만 원에 이른다. 그때마다 자신의 신상은 철저히 숨겼다. 그래서 ‘얼굴 없는 천사’로 알려졌던 나 할머니의 선행은 올해 초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주꾸미가 나에게는 희망이었듯 내가 기부한 작은 정성이 어려운 이웃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1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로 나 할머니(국무총리 표창) 등 36명과 강원 영월군의 쌍용사랑봉사회(대통령 표창) 등 2개 단체를 선정했다. 국민추천포상은 국민이 직접 추천한 대상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시상식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열릴 예정이다.

올해 국민훈장의 영예를 안은 수상자는 총 6명. 이 가운데 강대건 씨(81)는 1979년부터 34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찾아 무료로 치과 진료를 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그는 올해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여하는 ‘교회와 교황을 위한 십자가 훈장(교황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4년부터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진료소와 학교 유치원을 운영하며 ‘말라위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는 백영심 씨(51)는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자로 결정됐다. 1999년 12억 원 상당의 건물을 충북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한 임순득 할머니(2012년 작고), 경기 안양시 중앙시장에서 콩나물을 팔아 마련한 4억5000만 원 상당의 주택을 올해 5월 장학재단에 기증한 이복희 씨(67) 등도 국민훈장 수상자가 됐다.

이 밖에 얼굴 기형 어린이들의 무료 성형을 지원해 온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장(55), 파독 간호사 출신 교포를 배우자로 둔 인연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여 원을 기부한 독일인 하르트무트 코셰 씨(71) 등이 각각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다. 최재천 심사위원장(국립생태원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더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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